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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과 작별하지 않는다.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by 하민영 Mar 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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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중에서-

    

제주에 가면 인선을 만날 수 있을까?    

  

빛과 어둠 사이를 가르며 영원처럼 느리게 하강하는 수천수만의 무심한 눈송이들 속에서, 이곳에 있지 않은 사람을 간절히 생각하는 마음이 그렇게 정심에게서 인선에게로, 인선에게서 경하에게로 스며든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중에서-     


제주에 가면 경하가 새를 구하러 가던 길에 보았던 폭설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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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3 평화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제주 4.3 평화공원은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공원이다. 제주 4.3 사건은 1948년 11월 17일 이승만 정권에 의해 제주도에 한정된 계엄령이 선포되고 정권과 미군정의 비호아래 군경의 토벌대에 의해 어린아이 아녀자 주민 가릴 것 없는 학살이 자행되었다. 당시 희생된 사람은 3만여 명에 이른다. 한강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기념관은 청록색 부채를 연상시키는 상부와 타원형 건물 외부 화강암 연회색과 이삼 층은 검은 벽을 이루고 있다. 4.3의 역사를 담은 그릇의 형태라고 한다. 날씨만큼이나 숙연해지는 순간이다. 출입구에는 한강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노벨문학상 축하 현수막도 있다.


기념관에는 총 6개 전시관이 있다. 제1관은 당시 피신처로 사용한 천연동굴, 제2관은 4.3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해방 후 3.1절 경찰의 말발굽에 치어 어린아이가 사망하자 제주시민들이 경찰에 항의하러 갔다가 폭동으로 몰려 여섯 명이 죽고 8명이 다친 사건, 제3관은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로 하늘을 찌를 듯한 제주도민의 분노와 남한 단독선거 반대의 항쟁, 제4관은 제주도민을 폭도와 빨갱이로 간주한 이승만 정부와 미군정에 의해서 육지의 경찰과 북에서 온 서북청년단에 의해서 자행된 학살과 만행, 제5관과 6관은 진상규명운동이 담겨 있다. 전시실 마지막에는 한강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소개 되어 있다.  


기념관 초입에는 아직 제주 4.3 사건의 명칭이 지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누워있는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비석이 있다. 언제쯤 제대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지 모르겠다.

『작별하지 않는다』작품 속에서 인선과 경아가 세우려고 했던 등신대가 있다. 나무를 깎고 다듬던 인선이 보인다. 인선의 엄마가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 살아갔을 것 같은 돌담과 나뒹구는 그릇들도 보인다. 작품 속 인선의 아버지나 오빠의 은신처였을 법한 동굴은 발견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되었는데 오싹하니 소름 돋는다. 낮은 천장과 어둡고 습한 곳, 빛도 한점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미치지 않고 어떻게 이겨냈을까. 발견하여 그대로 보존하지 않고 화장해 버렸다고 하니 후대사람들이 못할 짓을 했다 생각하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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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은 기념관은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우리를 포함하여 십여 명이나 될까 말까. 전시관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듯 묵직했고 어두웠다. 결코 밝고 경쾌할 수 없는 장소다.

한 엄마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딸에게 과거의 희생과 의미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했다. 그모습이 반갑고 정겹다.



학살의 시발점이 되었던 1948년 3월 1일 발포사건과 제주도민들의 분노와 항거, 이후에 자행되었던 학살과 탄압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다. 제주공항 활주로에서 발견된 시신들 중에 옆으로 웅크린 채 누운 시신이 있다. 인선의 외삼촌일지도 모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눈을 씻고 찾아보려한다.


 인선의 어머니 정심만큼이나 잔인한 삶을 사신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무명천할머니라 불리는 진아영할머니의 이야기는 끔찍하다.  4.3 사건 당시 아래턱에 경찰이 쏜 총을 맞아 턱이 없어서 평생을 무명천으로 얼굴을 감싼 채 55년을 살았다. 할머니는 목숨은 구했지만 턱을 무명천으로 가린 채 말도 할 수 없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당시 할머니는 고향 판포리 오빠 집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서른다섯의 아낙이었다.  할머니는 선인장 열매나 톳을 따서 품팔이로 연명했다. 턱과 이가 없어 씹지를 못하니 소화불량과 위장병 영양실조를 달고 살았다. 턱없이 평생을 사셨던 무명천 할머니는 세월을 어떻게 견뎠을까.

진아영할머니 생가가 한림읍 월령리에 보존되어있다고 한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방문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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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경찰관과 군인, 마을이장 등은 잔혹했던 학살에 반대하여 주민을 구하고자 다. 또 이후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현기영 『순이삼촌』은 읽어 보지 않았지만 1978년 발표된 제주 4.3 사건을 최초로 다룬 문학작품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지만 4.3 사건을 겪은 제주 사람들은 기억조차도 망각한 사람들이다. '기억의 자살'이라는 말을 보았는데  소설가 김석범의 다음 말은 뼈가 아프도록 슬프다.


"기억이 말살당한 곳에는 역사가 없습니다. 역사가 없는 데는 인간의 존재가 없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은 주검과 같은 존재입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기억을 말살당한 4.3은 한국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입밖에 내놓지 못하는 일, 알고서도 몰라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기억의 자살'이라고 불렀습니다. 공포에 질린 섬사람들이 스스로 기억을 망각으로 들이쳐서 죽이는 '기억의 자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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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밖 평화공원에는 동백나무와 잔디밭 언덕 위에 4.3 사건을 상징하는 탑이 중앙에 세워져 있다. 위령탑에는 중앙연못물이 있다. 백록담에 물이 담긴 것처럼 보인다. 물은 살육의 현장을 정화하는 정화수이고, 중심부의 2인상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화된 대립을 극복하고 화해와 상생으로 나가는 모습이라고 한다. 2인상을 둘러싼 금속원형 고리는 인간과 평화의지를 표현했다.


위령탑을 중심에 두고 빙 둘러서  각명비가 세워져 있다.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명단과 나이 별 등이 마을별로 구성되어 있다. 비석을 읽다 보면 마을 성씨별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는지 같은 성씨의 같은 돌림자를 쓰는 사람들이 적게는 한두 명에서 많게는 십여 명에 이르기도 한다. 마을을 몰살하면서 같은 집안사람이 모두 사망한 것이다. 다 보지 않아도 그 희생이 눈물겹다. 이름도 없이 누구의 아이, 누구의 처라고 되어 있는 사람도 있다.


비설이라는 모녀 기념조각물은 1949년 1월 6일 당시 2 연대의 토벌작전으로 군인들에게 쫓겨 두 살 난 젖먹이 딸을 등에 업은 채 피신도중 총에 맞아 희생된 모녀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4.3 사건을 기념 조각물로 자주 보던 작품인데 확인하지는 못했다.


위령탑 위로는 위령제를 모시는 제단이 있다. 제단 앞에서 향이라도 피우고 올 것을 비가 와서 멀리서 마음속으로만 희생자들의 넋을 빌었다. 사람이 멋쩍어서 표현을 잘 못한 것이 후회된다.      


예전에는 제주 4.3 사건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제주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조금 달랐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독서토론도 한 후에 4.3 평화공원을 관람하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꼈다. 문학기행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지만, 전시 관람내내 작품 속 현장에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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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날씨는 비가 오지 않을 때는 포근했으나 3일 내내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했다. 푸르디 푸르뎅뎅하고 파랗고 검파란 제주 바다에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운 날이었다. 안개가 자욱하고 연회색 하늘구름이 내려와 앉았다. 중간산 어디메쯤에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은 안개가 자욱했고 한여름 장마빛처럼 비가 쏟아지기도 했다. 한라산 중턱쯤 응달진 곳에는 눈이 녹지 않았다. 산아래 시내와 시골마을은 기온이 따뜻했다. 얇은 셔츠만 입어도 될 정도였다. 변화무쌍한 제주 날씨를 경험했다.


집 담벼락과 밭의 경계인 검은 현무암은 화산 폭발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약 180만 년 전부터 화산활동이 일어나면서 형성되었다고 추정되는데 그 흔적이 지금도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백팔십만 년 전과 조우하는 것이니 감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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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유채꽃, 귤나무, 푸른 바다, 검은 돌담 등 육지와 다른 제주만의 풍경과 따뜻한 봄기운으로 힐링을 얻었다. 갈치회, 고등어회, 방어회, 고기국수, 오삼겹 등 맛집 탐방은 겨우내 묵어 있던 오장육부를 일깨웠다. 동네 마을 속  책방은 방문객들이 많아서 큰 돈은 못 벌어도 책방 운영만으로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골마을에 책방지기를 하고 싶다는 꿈은 계속 간직하기로 했다. 하나만 회원 혜령 님의 일터인 양배추와 무밭에서 현장 경험하고 양배추를 두둑하게 얻어오며 무거운 케리어가 결코 무겁지 않았다.


경하가 새를 구하러 갈 때 보았던 폭설 대신 봄을 맞이하는 제주를 보았다. 노란 유채꽃은 새 희망을, 탐스러운 감귤은 제주의 현재이자 미래다. 붉은 동백꽃은 스러져간 영혼의 모습과 닮았다. 동백꽃이 떨어져 땅을 붉게 물들였다. 붉은 꽃이 땅에 핀 것 같다. 제주의 영혼이 아름다움으로 승화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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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추천, 관광지 안내, 빗길 운전, 숙박까지 책임져주신 혜령 님, 여행에 동행해 주신 행복숲님과 어게인채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하나만 #라라크루

#딸아행복은여기에있단다_엄마에세이     

#간호사무드셀라증후군처럼_간호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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