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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Dec 12. 2022

키리코와 마그리트의 '낯설게 하기'

조르조 데 키리코, <사랑의 노래(1914)>

그림이 난해하다. 고대 그리스 시대를 연상시키는 대리석 조각상과 설거지할 때 낄 법한 붉은 고무장갑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실제보다 엄청나게 과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근대 건물과 멀리 보이 공장 굴뚝, 전체적으로 우울, 불안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전면에 초록색 공이 등장한다. 도대체 이것들은 서로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아니, 연관이 있긴 있는 걸까?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1888~1978)의 <사랑의 노래>다. 작품 제목까지 알고 나니 더 골치 아프다. 

“이게 어떻게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는 거지?” 몽환적인 고독의 세계, 즉 형이상학적 예술을 지향하는 ‘스콜라 메타피지카(Schola Metaphysica, 형이상학파)’ 그림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낯섦’이다. 고독을 낯설고 환상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우리를 이질적인 세상으로 안내한다. 브르통이 <첫 번째 초현실주의 제1 선언(1924)>을 발표하기 10년 전 초현실적 작품이다.

<거리의 우울과 신비(1914)>

그는 1911년 파리에 도착하여 피카소를 알게 되었으나 입체주의와는 결을 달리했다. 니체 철학과 아르놀트 뵈클린(Arnold Böcklin, 1827~1901)의 작품에 감탄한 그는 몽환적이고 세밀한 사실주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하지만 통찰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의 그림에서 인류가 사는 황량한 미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거리의 우울과 신비>도 악몽과도 같은 불안감을 조성한다. 긴 회랑을 잇는 아케이드 건물 사이, 아무도 없는 거리로 소녀가 굴렁쇠를 굴리며 입장한다. 하지만 그 앞에 등장한 거대한 그림자가 금세라도 연약한 소녀를 잡아 삼킬 듯하다. 사물의 내면에서 뿜어 나오는 비합리적인 공포를 보여주며 보는 이의 무의식을 자극한다. 

처음 문학과 시에 집중하던 초현실주의자들이 미술로 관심을 확대했을 때 키리코는 브르통의 관심을 끈 최초의 화가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 낯익은 일반 사물도 어떻게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알레고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그의 생각,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에서 영감을 받은 화가가 있었다. 바로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다. 1922년, 활동 초기 자신을 지지해준 시인 마르셀 르콩트로부터 카탈로그에 담긴 <사랑의 노래>를 보았다. 


“그것은 내 생애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내 눈은 처음으로 사유(思惟)를 보았다.”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1954)>

아이디어가 번쩍 스쳐 갔다. <길 잃은 기수(1926)>, <비밀의 운동선수(1927)>를 완성하면서 마그리트는 다다이스트에서 초현실주의자로 변신했다. 그러나 다른 작가처럼 꿈과 성적 탐구를 포기하는 대신, 실재하는 이미지를 역설적으로 배열했다. <빛의 제국>이 대표적이다. 어두운 밤, 불빛이 건물 유리창 통해 슬며시 새어 나온다. 가스등은 연못에 자신의 내면을 드러냈다. 은은하다. 낯익은 풍경이다. 그런데 시선을 높여 하늘을 보자 상황이 뒤집힌다. "어! 밝은 대낮이네." 뭉게구름이 둥실, 능청스럽게 떠 있다. 낮과 밤이 대화하며,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빛의 제국’이다. 마그리트는 1949년부터 1964년까지 모두 17점의 연작을 완성했다. 평소 그림에 관해 보완 설명이 없었던 작가의 해석이 전해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는 <빛의 제국>에서 다른 개념들, 즉 밤의 풍경과 낮에 보는 것과 같은 하늘을 재현했다. 이 풍경은 우리로 하여금 밤에 대해, 낮의 하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내 생각에, 이 낮과 밤의 동시성은 우리의 허를 찌르고 마음을 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힘을 시(詩)라고 부른다.” (마르셀 파케, <르네 마그리트>)

<금지된 재현(1937)>

벨기에 레신에서 태어난 그의 작품 세계는 반전이란 면에서 피카소의 입체주의보다 강렬하다. 피카소의 작품은 반(半)추상이기에 절반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마그리트의 작품은 결이 다르다. 구상적 이미지기에 안다고 생각했다가 느닺없이 허를 찔린다.

<금지된 재현>에는 거울을 정면으로 마주 대한 사내의 뒷모습이 보다. 거울의 물리적 현상을 고려할 때 실현 불가능한 이미지다. 하지만 감상자는 비웃기 보다 “무슨 의미일까?”라 질문을 던지게 된다. 신비가 없어도 신비롭다. 마치 뜻밖에 받은 선물 같다. 마그리트 자신은 "그림으로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비물질적인 생각은 그릴 수 없다. 그릴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사물이다. 따라서 '보는 이가 그림 속 사물을 보고 생각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매우 논리적이다. 그는 고백한다.


“나는 나의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


마그리트가 초현실주의 화가 중에서도 독특한 매력은 철학적인 논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사실이다. 유명한 <이미지의 배반>이다. 

이미지의 배반(1929)과 꿈의 열쇠(1927)

파이프를 그려 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썼다. 그림일 뿐이라는 뜻일까? 말장난 같지만, 여기엔 철학이 담겨 있다. 파이프의 본질은 담배를 피우는 데 있다. 그러니 담배를 채우지도 못하는 것이 진짜 파이프일 수 없다. 그림이라는 자기 고백이다. 사진 속 파이프를 보고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파이프의 그림자가 생략되었는지 모른다. 하긴 메시지만 전달하면 되었지 애써 실제 파이프를 보고 그릴 이유가 없었으리라. 

<꿈의 열쇠> 연작도 비슷한 언어-이미지와의 관계 설정이다. 하지만 좀 더 복잡하다. 작품 속 이미지와 이름이 서로 다르다. ‘가방-하늘’, 그 오른쪽이 ‘칼-새’, 다음이 ‘나뭇잎-탁자’. 그런데 마지막 하나, ‘스펀지-Éponge’가 빙고! 정답이다. 우리의 관념과 일치한다. 그러나 마그리트는 앞의 세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이 역시 우연한 배열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휴대폰(mobile phone)’은 전화의 기능이 강조된 이름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컴퓨터 기능을 발휘하는 오늘날에는 적합한 이름이 아니다. 다만 현대인 모두에게 같은 관념을 갖게 하기에 여전히 일치한다고 믿을 뿐이다.


“사물은 이름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그보다 더 적합한 이름을 찾을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조금 유식하게 풀어 설명하자. 프랑스어에 시니피앙(significant, 표현된 기호)과 시니피에(signifié, 그 기호가 의미하는 관념)라는 개념이 있다. 스위스의 언어학자인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가 기호와 사물이 우연히 만났기에 이 둘을 분리할 수 있다고 주했다. 이런 맥락에서 마그리트는 우리가 사물의 이름을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을 때 세계를 어떻게 파악하고 이해하며, 질서 지우며 통제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부러 사물을 부정확하고 익숙하지 않은 이름으로 명명함으로써 불안감을 유발하는 한편, 정상적이라는 것의 복잡성과 모순을 경고한다. (카트린 클링죄어, <초현실주의>)

‘그림 속의 그림’을 그린 <인간의 조건(1933(제목 사진)/1935)> 연작도 같은 관점의 확장이다. 다만 이미지와 이미지 간 역설을 표현했다. 작품은 바깥 풍경과 캔버스 위 풍경을 겹쳐 놓았다. 둘 다 같은 비례로 대응하여 그렸다. 따라서 실재(實在)와 캔버스에 담긴 자연이 혼란스럽다. 다행히 이젤과 캔버스의 흔적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하지만 둘 다 그림이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그림’에 관한 관습적 인식에 도전한 작품이다.

 

현대 미술에서 제목은 작품 감상에 불필요한, 또는 문자가 지닌 불순물로 종종 비난받았다. 그래서 마그리트는 제목과 작품과의 관계 시(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목을 정할 때 고민이 많았고, 친구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유리 열쇠(1959)>의 경우 캔버스 뒷면에 수많은 제목을 썼다가 지운 것을 볼 수 있다. 메트로놈, 천자의 열쇠, 완벽한 동의, 금과 은, 아름다운 말, 재현, 명쾌한 생각 등이다. (최상운, <플랑드르 미술여행>) 

사실 그림이나 언어, 모두 본질이 아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읽기와 쓰기가 일반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세대 전인 5백 년 전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부터였다. (엘렌 디사나야케, <미학적 인간>)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진리 탐구에 있어서 언어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했다. 철학자들의 모호한 언어로 인해 오히려 혼란을 조성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예술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따라서 마그리트는 비트겐슈타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 내용을 시각적 혹은 시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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