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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Jan 30. 2023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만화와 망점

<이것 좀 봐 미키(1961)>

라우센버그와 재스퍼 존스가 구상미술을 재도입함으로써 1960년 초반 미술계는 팝 아트 계열의 활동 공간이 마련되었다. 작품은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을 세상에 알린 <이것 좀 봐 미키>이다.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을 큰 캔버스로 옮겼다. 윤곽을 선명하게 처리하면서 상업 인쇄에 사용되던 벤데이 점을 활용한 첫 번째 대형 유화 작품이다. 아들의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아빠는 이런 그림 그리지 못하지!”


만화는 색채나 구성이 단순하고 평면적이다. 대신 강렬한 선, 말풍선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임팩트가 강해 어린이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던 그로서도 매우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내용은 단순하다. 도널드 덕이 상의 뒷자락에 낚싯바늘이 걸린 줄도 모르고 월척을 낚은 줄 알고 흥분한 모습이다. 영리한 미키가 장갑 낀 손으로 입을 막아 터지려는 웃음을 참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왜 이 장면을 골랐는지는 알 수가 없다. 소위 예술다운 예술, 품위 있는 예술 행위를 한다고 자부하는 기존의 미술가들을 조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리히텐슈타인은 이후 만화가 주는 특징을 좀 더 노골적으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특히 인쇄물임을 고백하는 망점(Benday dot)이 대표적이다.

품격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팝 아트의 성격과 맞아떨어졌다. '저급' 예술인 만화를 도입하여 '고급' 예술을 창조한다는 발상이다. 이때부터 그의 이름은 현대미술의 중심에 오른다. 

<돋보기(1963)>

한편 1961년 가을, 뉴욕의 유명한 아트딜러 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는 앤디 워홀(Andy Warhol)로부터 만화 주인공을 소재로 한 그림을 보았다. 몇 주 전 같은 주제로 제작한 리히텐슈타인의 새 작품을 받은 이후의 일이었다. 그때 레오는 워홀에게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워홀은 마음을 돌려 다른 분야의 주제를 찾기로 한다. 레오의 행동에서 자기 작품이 리히텐슈타인의 것보다 혁신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다. 레오는 특별한 안목을 지닌 화상(畵像)이다. 현대 미술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배우, 사진가, 화가, 조각가로 활동했으며, 워홀과 로버트 라우센버그를 만들어 낸 장본인으로 평가받는다. 이듬해 1962년 2월, 레오는 자신의 갤러리에서 열린 리히텐슈타인의 첫 개인전이 열리기도 전에 그의 모든 작품이 팔려나가는 성과를 거두었다. 레오의 안목이 빛을 본 순간이었다.

당시 워홀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보고 특히 감탄한 것이 망점, 바로 벤데이 점이다. 1878년경 삽화가 벤저민 데이가 발명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 착색 드로잉 방법은 이미 산업 현장에서 사용하던 동판화 인쇄기법이다. 먼저 금속판에 그레이버로 직접 선을 새겨 넣어 제판한다. 그런 다음 분리된 이미지들의 내부를 작고 규칙적인 기하학적 망점으로 채우는 방식이다. 방식에 있어서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과 맥을 같이 한다. 망점은 자기 작품이 기계적으로 보이기를 희망했던 리히텐슈타인의 의도와 맞아떨어졌다.

<아를의 침대(1992)>

그러나 리히텐슈타인은 벤데이 점의 정밀함을 완전한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이 부분이 기계적으로 대량 생산해내는 앤디 워홀의 ‘실크 스크린 기법’과 구별되는 대목이다. 1961년 초기에는 직접 구멍을 뚫은 알루미늄판에 개털붓을 사용했다. 그러나 엄밀하게 규칙적인 패턴을 만들 수 없게 되자 탁본 또는 ‘프로타주’ 기법(그림물감을 화면에 비벼 문지르는 채색법)을 시험했다. 그리고 질감 있는 표면, 예를 들면 모기장으로 쓰이는 금속망 위에 올려놓고 연필로 그 위를 문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캔버스에 오버헤드 프로젝터로 비춘 망점과 구멍 뚫은 판(板)을 맞춘 후 물감을 칠하는 스텐실 기법을 사용하고 나서야 자신이 추구하던 기계적 균일성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비로소 그는 종종 윤곽선 안쪽을 벤데이 점으로 채우는 일을 조수에게 맡길 여유를 찾았다. (제목 그림; <충돌에 대한 반향(1990)>)

<행복한 눈물(1964)>

처음에는 하나의 작품 안에 한 가지 크기의 색점만 사용했다. 경제적이다. 그러다 줄무늬로도 발전했다. 쉽고 빠르게 스케치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 벤데이 점을 대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간의 깊이를 주고 생동감을 표현하기 위해 벤데이 점의 크기를 다양하게 변화시켰다. <이것 좀 봐 미키>에서는 망점이 미키의 얼굴과 도널드 덕의 눈을 장식하지만, 다양한 진화를 통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피카소를 비롯한 존경하는 작가들의 작품에 이 망점을 활용하여 재해석하는 연작물도 발표했다. 


그는 주로 로맨스와 전쟁 혹은 군대라는 진부한 주제를 다루었다. 만화가 주는 원색의 밝은 색채가 아니었다면, 대중에게 신선하게 다가올 수 없었을 작품세계다. 이 지점에서 우린 궁금하다. 원작 만화가와의 관계 설정이다. 중론은 리히텐슈타인 덕분에 그들에게 불후의 명성이 부여되었다고 본다. 그렇지 않았다면, 원작 만화는 이미 오래전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렸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우리에게 유명한 작품은 <행복한 눈물>이다. 대기업 비자금 논란과 엮여 그 구매 가격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715만 달러(당시 한화 약 86억 5천만 원). 예술이 지나치게 큰돈과 결합하니 팝 아트임에도 대중과는 큰 괴리를 보였다.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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