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화가 중 가장 인기 있는 작가가 바로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다. 영국의 요크셔주 브래드퍼드에서 출생한 그는 지역적으로 영국과 미국이 겹친 화가이다. 영국에서는 팝 아트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동성애자였던 그는 보수적이던 영국을 떠나 1963년 말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다. 커밍아웃하여 그간의 부담감을 털어낸 후 25년간 이곳에서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금세라도 비가 올 것 같은 우중충한 영국과는 달리 캘리포니아는 1년에 320일, 태양이 눈 부시고 하늘은 맑고 파랬다. 대기 중에 수증기가 없어 자연은 더 단순하게 보였다. 이래저래 홀가분해진 그는 자기 내면을 자유스럽게 화폭으로 옮겼다.
당시 미국은 추상표현주의가 유행하고 있었다. 난해한 양식이다. 곧이어 뉴욕을 중심으로 새로운 물결, ‘팝 아트’가 밀려왔다. 이때 호크니도 ‘5분 정도’ 팝 아티스트였다. 그러나 그는 피카소처럼 미술에 진보는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어떠한 유파나 운동에 가담하지 않았다. 신선하고 위트 있으며, 시대의 분위기가 풍부하게 담긴 그림을 그렸다. (마틴 게이퍼드, <다시, 그림이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수영장 시리즈가 이때 탄생했다. 수영장이란 특성상 맨몸, 그중에도 남성의 누드를 관음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합법적(?) 공간이다. 1966년 UCLA에서 제자였던 11살 연하 피터 슐레진저를 자주 등장시켰다. 수영장 연작은 몇 가지 단순한 색상과 꼬불꼬불한 흰색 곡선으로 간단하게 처리한 물결 표현이 독특하다. ‘투명성’을 주제로 한 미니멀리즘이다.
대표 작품 <더 큰 첨벙>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고 수면의 물이 튀고 있는 수영장 전경만 보인다. 물방울을 그리는 데 약 2주일이 걸렸다. “2초나 이어질까 싶은 찰나의 (역동적) 장면을 아주 느린 방식으로 그렸다.” 사진으로 치면 셔터의 속도를 짧게 준 것과 같은 효과로, 시선을 물방울에 집중시킨다. 그랬음에도 과학적인 현상과 일치하진 않는다. 그를 탓할 일이 아니다. 눈은 망막에서 일차적으로 정보를 조합, 분석하여 1/25초마다 한 장씩 스냅샷처럼 두뇌로 전송한다. 따라서 1/25초 사이에 도달하는 빛은 누가 먼저 도달했는지 알 수 없기에 시간 정보를 완전히 상실한다. 따라서 그의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추상과 구상, 사진과 회화, 그리고 외면의 경쾌함과 내면의 무거움이 복합적으로 반영했다. “전후 어두운 회색풍에서 벗어나 젊음, 색채, 낙관주의를 잘 보여준 작품”이라는 평가(런던 테이트 미술관)다.
세월이 흘러도 그의 작품은 여전히 세련미가 넘친다. 1960~70년대 수영장 시리즈와 별개로 그의 대표적인 초상화는 <클라크 부부와 고양이 퍼시의 초상>이다. 그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을 포착해 사진 모자이크 형태로 표현했다. 아파트 실내를 배경으로 패션 디자이너 오시 클라크와 그의 아내 셀리아 버트웰, 그리고 그들의 고양이를 그렸다. 정지한 듯 고요한 장면은 관람자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내도록 유도한다.
1997년 미술관 솔츠밀을 운영하는 친구 조너선 실버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몇 달간 잉글랜드 북동부에 머물렀다. 조너선이 살던 에더비(Wetherby)로 가는 길은 브리들링턴에서 요크(York)를 경유하게 된다. 이곳의 매우 유쾌한 드라이브 코스에 관심을 기울였다. 결국, 25년간 지냈던 LA 생활을 청산하고 해안 도시 브리들링턴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그는 2006년 <터널> 연작처럼 끊임없이 바뀌는 계절의 변화를 담았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심지어 9대의 고해상도 영화 카메라로 풍경을 동시에 촬영했다. 미술사에서 전례가 없는 작업이었다. 그는 카메라의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 각 카메라는 수준이 다른 줌(zoom)과 노출 상태로 설정하여 눈과 카메라의 차이를 극복하려 했다. 2010년, 클로드 로랭의 <산상수훈(1656?)>을 담은 고화질 디스크를 입수했다. 그는 폭 2.6m, 높이 1.7m의 대작을 포토샵을 통해 청소했다. 클로드의 빠른 붓놀림을 따라갔고, 그의 특유한 색채를 최대한 구현했다. 깊은 공간이 양쪽에 있고, 산이 중앙에 놓였으며, 올려다보는 구성에 마음이 끌렸던 작품이다. 그러나 주제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작품이 어두워진 것이 분명했다. 프릭컬렉션미술관 큐레이터가 18세기에 화재를 당했다고 알려주었다. 마침내 그림이 생생해지자 놀랍게도 작품에 절름발이와 맹인이 구덩이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틴 게이퍼드,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다시 그림이다>) 화가로서의 직관과 최신 기술이 합쳐진 결과이다. 호크니는 30개의 캔버스에 자신의 방식으로 <더 큰 메시지(2010)>를 완성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오히려 카메라의 단점에 깊이 주목했다. 자연이 주는 부피감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그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카소나 마티스의 그림은 세상을 흥미진진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는데, 사진은 매우 따분하고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보이게 한다고 생각했다. 사진은 기하학적으로 대상을 보게 할 뿐 인간의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면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이곳에서 그린 풍경화 중에는 <개로비 언덕>과 <터널> 연작이 유명하다. 앞서 완성한 <개로비 언덕>은 원색이 주는 아름다움과 경쾌하고 매우 구불구불한 언덕이 특징적이다. 그는 시선이 한 점에 고정되는 원근법을 싫어했고, 이런 맥락에서 직선보다 구불구불한 길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언덕을 겹쳐 묘사했다. 그의 작품 주제는 ‘공간’과 ‘움직임’인데, 작가가 공간 이동을 하면서 완성했다는 의미다.
그는 난해한 최신 과학 이론에 밝았다. 작품에서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 중 ‘중첩’에 관한 이해를 반영한 흔적이 발견된다. 호크니는 공간이 없으면 시간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에서 “시간과 공간은 하나이다”라는 멋진 가사가 아인슈타인이 등장하기 전인 1882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또한 인간이 우주의 먼 곳을 바라보았을 때 그것은 빛이 되돌아와 망막에 닿은 과거의 이미지라는 것도 깨닫고 있었다. 모두 호크니의 깊은 지적 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