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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현 Aug 02. 2024

12. 치매 경험자의 이야기

책리뷰 part3. 치매 환자 본인의 말과 글

지난번 책 리뷰 part2-2(https://brunch.co.kr/@greenktm/20)에서는 치매 환자의 아들과 딸 입장에서 쓰인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어보았지요. 일곱 작가의 글들을 통해 내 가족의 치매와 마주하는 당혹스러운 순간부터, 상황을 받아들이고 적응해 가며 노력하는 다양한 방법들, 더 나아가 그 안에서 발견하는 의미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책 리뷰의 마지막 파트인 part3에서는 치매 환자 본인의 관점에서 쓴 책과 연구들을 통해 최대한 당사자의 경험에 다가가려 합니다. 가족이나 다른 돌봄 제공자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유추해 왔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환자 중심의 시각이 강조되고, 치매 환자 본인도 자신의 의견을 직접 표현할 수 있다는 인식이 대두되면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질적연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화에서는 2020년도에 BMJ Open과 Journal of Clinical Nursing에 실린 두 편의 질적 연구와, 사토 마사히코의 책 <기억하지 못해도 여전히, 나는 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스스로의 노력


기술의 발달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치매의 발견이 가능해졌습니다. 치매의 고위험군인 경도인지장애부터 진단받기도 하고요. 즉, 조금 더 나 스스로가 대비할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뇌에 혈류 공급이 잘 안돼서 뇌세포에게 충분한 산소와 영양분의 공급이 차단되어 유발되는 혈관성 치매는 운동이나 뇌활동 개선을 통해 예방할 수 있고요.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하더라도 더디게 진행되도록 노력하고, 추후에 겪을 상황들에 대해 미리 가족들과 의견을 나누며 준비하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치매의 특징 중 하나로 지남력 저하가 있는데요. 시간에 대한 개념이 점차 흐릿해지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시간을 체크하는 것이 좋습니다. 휴대폰이나 컴퓨터 등을 보조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도 좋고요. 조금은 헤매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수면 시간을 파악하는 것은 건강관리에서도 중요하다. 그래서 매일 컴퓨터에 기상 시각과 취침 시각, 수면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일어난 시각을 알면 내가 얼마나 잤는지, 수면 시간이 부족하다면 오늘은 쉽게 피로해지겠다는 식으로 그날의 건강 상태를 예측할 수 있다. 모임에서 만난 어느 치매 당사자가 아침에 일어난 시각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일어나자마자 휴대전화로 시계를 찍어 놓으라고 알려주었는데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 치매에 걸리고 나서 컨디션이 좋은 날과 나쁜 날의 차이가 매우 커진 것을 느낀다. 그래서 수면 시간을 잘 관리해서 건강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기억하지 못해도 여전히, 나는 나> 85p


한 가지에만 주의를 집중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일은 메모이다. ... 그렇게 붙여놓은 것이 많아지면서 메모는 자신의 역할을 잃어버렸다. 그러다 어느 모임에서 '달력에는 딱 세 가지만 기록한다'는 노하우를 배웠다. 세 가지 정도는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이 되면 글자가 글자로 보이지 않고 그저 무언가 쓰여 있는 배경으로 보일 뿐이다. 치매에 걸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다. 결국 모든 일이 그렇다. 한 가지씩 집중해서 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도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 보통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빨간 신호등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선다. 그러나 치매에 걸리면 당연한 일조차 어려워져서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빨간 불일 때에도 길을 건너고 만다. ... 외출이 불편해지면 밖에 나가는 것을 자꾸 피하게 된다. 하지만 외출을 포기해버리면 나의 세상은 점점 좁아진다. 일상의 즐거움과 삶의 의욕이 줄어든다. 그래서 나는 힘들더라도 외출을 포기하지 않는다. ... 혼자서도 잘 지내기 위한 방법
<기억하지 못해도 여전히, 나는 나> 85p,101~102p,110~111p




의미 있는 삶 희망


치매 상태가 진행되어도 환자들은 여전히 자신 스스로이길 바랍니다. 기존의 사회적 연결을 유지하고, 활동적이고 즐거운 삶을 향유하기를 희망합니다. 조금씩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들을 만나게 되지만, 그 상태에서도 다시 나로서 의미 있는 삶을 희망합니다.


The participants talked about activities they wanted to carry forward, and these occupations were important to experience mastery, meaning and content to the day. Continuing with activities also means keeping in contact with existing networks. The importance of usual activities and social engagement was also pointed out in a review of qualitative research on the experience of life with dementia. The ability to remain active and engaged was considered essential for maintaining continuity and well-being.
<I need to be who I am>


People with dementia express a need to continue to be themselves when the dementia condition progresses and they describe important elements like staying connected, being active and participate and to live in the moment.
<I need to be who I am>


It was important for participants to engage in activities that were meaningful and pleasant. For instance, particular hobbies in and around their own house, such as walking, reading the newspaper or doing the laundry, or activities organised by others.
 <The perspectives of people with dementia on their future, end of life and on being cared for by others>


나는 현재 알츠하이머형 치매라는 병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치매에 걸리기 전에는 할 수 없었지만, 치매에 걸리고 나서야 새롭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 치매 증상은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이고, 치매에 걸린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정말이지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다. ... 점점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진다 해도 '나는 여전히 나'입니다. 내가 병에 걸렸다고 다른 사람을 더 신경 쓸 필요도 없고, 타인과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되는 겁니다. 힘들 때는 혼자 애쓰지 말고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면 됩니다. ... 치매에 걸린 당사자가 마음을 담아 하는 이야기만이 주변의 오해와 편견을 줄이고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치매에 걸렸다고 절대 인생을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기억하지 못해도 여전히, 나는 나> 135~137p, 174p




당사자가 원하는 배려


환자의 가족이 환자를 신경 쓰고 걱정하는 것처럼, 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자녀가 돌봄 보호자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의 모성과 부성은 남아있기 때문에 환자가 정말로 바라는 것은 헌신적이기만 한 효도가 아니라 자녀의 건강과 행복임을 알아야 하지요. 그리고 또 하나, 여전히 존중을 바랍니다. 얼마 전에 어르신과 따님이 함께 진료실로 들어온 경우가 있었는데요. 시작할 때는 환자의 눈과 입을 바라보았던 진료였지만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핑계 삼아, 조금씩 조금씩 돌아서 끝마칠 때는 보호자를 향하게 되더라고요. 사토 마사히코씨의 글을 보고 다시 한번 다짐하였지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보호자와 그 과정을 다시 해야 할지라도, 최대한 환자를 존중해 주고 환자와 직접 끝까지 의사소통을 하기로. 


치매 당사자는 자신을 돌보다가 가족이 지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단기보호서비스 같은 지역 내 자원을 잘 활용해 반드시 가족 본인을 위한 시간을 보내기를 바랍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방법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가 많지만 치매는 사람마다 증상이 달라서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참고할 정보일 뿐이죠. 그대로 되지 않는다고 자책하거나 괴로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억하지 못해도 여전히, 나는 나> 178p


Thinking about other people who care for them, one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for participants was that they could speak up and that they were heard. Some of the participants mentioned that it bothered them to think that other people, mainly professional caregivers, were not taking them seriously. Moreover, it was important for participants to maintain their dignity, particularly when other people took over certain (intimate) care tasks. Thinking about the future, if the dementia got worse, some participants feared losing their dignity. Being treated carefully and with respect may help to accept others' assistance while maintaining a feeling of self‐worth.
<The perspectives of people with dementia on their future, end of life and on being cared for by others>


Some of them found it difficult to accept assistance from others. Moreover, some disliked the feeling of being a burden to others or that they had to depend on others to fulfil their needs. They tried to do as much as they could by themselves, as long as they were still capable. It annoyed some of the participants when people took over tasks that they could easily do by themselves.
 <The perspectives of people with dementia on their future, end of life and on being cared for by others>


치매 당사자에게 의사의 말 한마디가 미치는 영향은 정말 큽니다. ... 나 역시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알츠하이머형 치매라고 진단받았을 때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엄청난 충격이었지요.  그러니 부디 환자에게 병명을 알릴 때는 단계적으로 설명해 주는 배려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질병의 예후는 개인마다 다르다는 사실도 꼭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 의사 앞에 환자 본인이 있는데도 보호자에게만 이야기하는 의사도 있습니다. 보호자가 아닌 환자 본인에게 먼저 설명해 주기 바랍니다. 진찰이나 치료 내용을 서류나 메일로 받을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진료실에서 의사가 한 말이나 지시 사항을 잊어버리더라도 언제든 확인할 수 있어서 마음이 놓입니다.
<기억하지 못해도 여전히, 나는 나> 179~180p




<레퍼런스>


1. 사토 마사히코, 『기억하지 못해도 여전히, 나는 나』, 성기옥, 유숙경 역, 서울 : 세개의소원, 2023. [認知症になった私が傳えたいこと]

2. Bolt, S. R., van der Steen, J. T., Khemai, C., Schols, J. M. G. A., Zwakhalen, S. M. G., & Meijers, J. M. M. (2022). The perspectives of people with dementia on their future, end of life and on being cared for by others: A qualitative study. Journal of clinical nursing, 31(13-14), 1738–1752.

3. Telenius, E. W., Eriksen, S., & Rokstad, A. M. M. (2020). I need to be who I am: a qualitative interview study exploring the needs of people with dementia in Norway. BMJ open, 10(8), e035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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