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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연주곡에 관하여 1

by 코코맘

어렸을 때는 그리고 꽤 최근까지도 바흐의 곡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때 피아노를 배우면서는 대단히 화려하지도 않은 주제에 어렵기는 또 어려워서 묘하게 잘 안 되는 느낌이 싫었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다소 삼삼하고 깔끔한 맛만 있는 느낌이 싫었다. 음계의 나열이 있을 뿐 곡 자체의 story랄까 plot이랄까 진행이 재미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바흐의 곡들이 가장 듣기 편하다.

절대 못 먹겠다던 평양냉면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다소 싱겁고 삼삼한 (아 물론 위대한 작곡가이므로 싱겁다는 말은 다소 부적절할 수 있습니다) 이 곡들이 너무 좋다.

학생 때처럼 속 편하게 수학공부나 하고 싶다는 생각을 최근에 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오늘 바흐의 곡에서는 좌표평면이 보인다. 음계가 어쩌고 저쩌고 평균율이 어쩌고 저쩌고 들어본 것도 같고 배워본 것도 같은데 사실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음감, 박자감이 나쁠 뿐만 아니라 코드도 몰라 어떤 요소가 음들의 조합을 ‘조화롭게’ 느껴지게 하는지도 모른다.


막귀에게도 들리는 균형 잡힌 이 느낌이 그저 참 좋다. 대단히 화려하지 않아 편하고, 기다려지는 하이라이트도 딱히 없는. 삼삼한 균형만으로 이루어진 저 세계가 참 좋다. 그 안으로 들어가 나란히 팔 벌리고 수평을 맞춘 채로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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