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관계 방치
오래된 관계 방치
Q: 왜 오랜 친구에게 연락 안 할까요?
A: 어색할 것 같아서입니다. 해법은 "오랜만이야. 생각나서 연락했어"라는 간단한 메시지입니다. 대부분 기뻐할 것입니다.
오래된 연락처
윤하는 스마트폰을 뒤적이다가 멈칫했다.
한참 스크롤 아래,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회색 톤의 프로필 사진 하나.
‘정하준’.
대학 시절, 누구보다 가까웠던 친구.
함께 밤을 새우며 과제를 했고, 서로의 실패를 위로하며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를 말해줄 수 있을 만큼 깊었던 관계.
그러나 졸업 이후, 취업, 이직, 이사, 연애와 이별이 반복되며 두 사람의 연락은 조금씩 멀어졌다.
그 사이 시간이 칼자국처럼 관계를 잘라냈고, 이제 남은 건 연락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듯한 불편함뿐이었다.
“… 지금 연락하면, 어색하겠지?”
윤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내려놓은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밤하늘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창문을 두드릴 때, 이상하게도 그의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왜 지금, 하필?”
윤하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가슴속에 눌러 담았다.
다시 듣고 싶은 목소리
며칠 뒤, 사무실에서 퇴근하던 길이었다.
지하철 안, 피곤으로 축 처진 사람들 틈에서 윤하는 문득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하준은 뭘 하고 있을까?
그때였다.
누군가의 카톡 알림음이 울렸는데
“오랜만이야. 생각나서 연락했어.”
라는 문장이 화면에 스쳐 지나갔다.
심장이 순간 멈춘 듯 턱 밑까지 올라왔다.
그 문장 하나만으로도 관계가 다시 이어지는 걸 보니
윤하는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
수십 번 망설이다 결국 메모장에 문장을 적어봤다.
‘오랜만이야.
생각나서 연락했어.’
단 14글자.
하지만 그 문장을 보내는 일은
백만 개의 단어를 쓰는 것보다 어려워 보였다.
전송 버튼
그날 밤 윤하는 결국 잠들지 못했다.
새벽 2:46.
휴대폰 화면이 푸르게 빛났다.
이제 안 보내면 영영 못 보낼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떨리는 손가락 끝이 전송 버튼 위에 머물렀다.
3초.
2초.
1초.
전송 –
메시지는 바람결에 날아가듯 푸른 체크 표시로 변했다.
그 순간, 윤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소리 없이 웃었다.
두려움과 안도, 후회와 기대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
그리고 10분 후.
잠잠하던 휴대폰이 진동했다.
“윤하야?
나도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어.”
윤하는 그대로 울어버릴 뻔했다.
그 문장은 마치 오랫동안 잃어버린 이름을 다시 되찾았다는 듯 따뜻했다.
다시 만나는 길 위에서
일주일 뒤, 두 사람은 강가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서로 어색하게 웃는 순간조차도 반가웠다.
“살다 보니, …진짜 많이 바빴지?”
“응. 너도 그렇잖아.”
짧고 단순한 문장 속에
지난 세월의 무게와 서로에 대한 미안함이 스며 있었다.
햇빛이 잔잔한 강물에 비치며 반짝였다.
그 빛이 두 사람 사이에 오래 묵은 서늘함을 조금씩 녹여내는 듯했다.
“우리… 흘려보낸 건 많지만,”
하준이 말했다.
“그래도 지금 다시 이어진 거면, 아직 늦지 않은 거겠지?”
윤하는 미소 지었다.
“응. 늦지 않았어.”
그날 저녁, 윤하의 연락처 목록에서 ‘정하준’의 이름은
더 이상 오래된 회색이 아니었다.
관계란 때로 오래 방치해도
한 문장으로 다시 피어나는 것.
단 하나의 진심 어린 메시지면
사라진 줄 알았던 온기가 되살아나는 법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다시 따뜻하게 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