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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살아야 100년인것을 (64)안개 속의 달리기

모호한 목표

by seungbum lee

모호한 목표
Q: 왜 "성공하고 싶다", "행복하고 싶다"처럼 추상적으로 말할까요?
A: 구체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법은 SMART 원칙입니다. "3개월 내 매주 3회 30분 운동"처럼 구체적, 측정 가능하게 만드세요.




안개 속의 달리기 (The Fog Runner) 흐릿한 욕망의 밤



서울의 밤거리는 화려했지만, 32세 김민준의 세상은 뿌연 안개 같았다. 3차까지 이어진 회식, 넥타이는 삐뚤어졌고 눈은 풀려 있었다. 포장마차의 주황색 천막 아래서 민준은 혀 꼬인 소리로 동료에게 한탄했다.
"야, 나 진짜 성공하고 싶다. 돈도 많이 벌고, 행복해지고 싶다고. 근데 왜 내 인생은 맨날 이 모양이냐?"



동료는 졸고 있었고, 민준은 소주잔을 비웠다. 그의 '성공'과 '행복'은 마치 구름 같았다. 잡힐 듯하면서도 손을 뻗으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바닥에 떨어진 낯선 명함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바탕에 은색으로 단 한 줄만 적혀 있었다.

[당신의 모호함을 선명한 현실로 바꿔드립니다. - 라이프 아키텍트 K]




취기에 홀린 민준은 명함에 적힌 주소로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허름한 빌딩 지하, 간판도 없는 사무실이었다.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와 함께 날카로운 눈매의 중년 남성, K가 그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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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구체화민준은 말문이 막혔다. K는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당신의 문제는 목표가 안개처럼 흐릿하다는 겁니다. 뇌는 모호한 명령을 수행하지 못해요. 지금부터 3개월간 'SMART 계약'을 진행합니다. 실패하면 당신이 가장 아끼는 것, 당신의 '목소리'를 가져가겠습니다."
"네? 목소리를요?"
"농담 같습니까? 구체화하지 않은 꿈은 어차피 침묵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K가 칠판에 적었다. SMART.
"Specific(구체적), Measurable(측정 가능), Achievable(달성 가능), Relevant(관련성), Time-bound(기한). 이 원칙에 따라 목표를 다시 말해보세요."
"성공하고 싶으시다고요?"
K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자가 되고 싶어요. 행복하게 살고 싶고요."
K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소원이 아니라 잠꼬대입니다. '부자'가 얼마를 말하는 겁니까? 10억? 100억? '행복'은 어떤 상태죠? 하루 종일 웃는 건가요?"

민준은 말문이 막혔다. K는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당신의 문제는 목표가 안개처럼 흐릿하다는 겁니다. 뇌는 모호한 명령을 수행하지 못해요. 지금부터 3개월간 'SMART 계약'을 진행합니다. 실패하면 당신이 가장 아끼는 것, 당신의 '목소리'를 가져가겠습니다."
"네? 목소리를요?"
"농담 같습니까? 구체화하지 않은 꿈은 어차피 침묵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K가 칠판에 적었다. SMART.
"Specific(구체적), Measurable(측정 가능), Achievable(달성 가능), Relevant(관련성), Time-bound(기한). 이 원칙에 따라 목표를 다시 말해보세요."
민준은 덜덜 떨며 머리를 굴렸다. 단순히 '건강해지고 싶다'가 아니었다.
"3개월... 3개월 뒤 12월 31일까지, 체지방률을 15%로 만들고, 10km 마라톤을 50분 안에 완주하겠습니다."
K가 스톱워치를 눌렀다.
"좋습니다. 측정 가능한 고통이 시작되겠군요."



숫자가 만든 지옥과 환희
다음 날부터 민준의 지옥이 시작되었다. '운동 좀 해야지'라고 생각했을 때는 1년에 한 번도 헬스장에 가지 않았던 그였다. 하지만 이제 목표는 숫자로 그를 옥죄었다.
매주 월, 수, 금(Specific/Time-bound): 새벽 6시 기상.
러닝 5km, 페이스 5분 30초 유지(Measurable): 스마트워치의 숫자가 붉게 빛날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한 달이 지나자 위기가 찾아왔다. 무릎 통증과 회사 업무 폭주가 겹쳤다.
"오늘은 좀 쉬고 내일 두 배로 할까?"
과거의 민준이라면 포기했을 것이다.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는 모호한 생각은 '오늘은 힘들어서'라는 모호한 핑계에 늘 졌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목표는 명확했다. 오늘 5km를 뛰지 않으면 이번 주 데이터가 무너지고, 12월 31일의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진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핑계를 들어주지도 않았다.
그는 비가 쏟아지는 밤, 절뚝거리면서도 트랙을 돌았다. 빗물과 땀이 뒤섞여 시야를 가렸지만, 스마트워치의 숫자만은 선명했다. 그 순간, 민준은 깨달았다. '성공'은 멀리 있는 무지개가 아니라, 지금 발을 내디디는 이 1미터, 그리고 1초의 단축이라는 것을.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선명해진 세상
12월 31일, 마라톤 대회 날.
출발 신호와 함께 민준은 튀어 나갔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지만,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속도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4km 지점, 7km 지점... 구간 기록을 확인할 때마다 확신이 차올랐다.
결승선이 보였다. 전광판의 시계는 49분 45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민준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결승선을 통과했다. 49분 58초.
거친 숨을 몰아쉬는 민준 앞에 K가 나타났다. 그는 박수를 치지 않았다. 다만 계약서를 찢어버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목소리는 가져가려 했는데, 이제 필요 없겠군요. 당신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으니까."

민준은 땀에 젖은 얼굴로 웃었다.
"이제 알겠습니다. 행복하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1분간 하고,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고, 1년에 두 번 여행을 갈 겁니다. 그게 제 행복의 정의니까요."
민준이 바라본 서울의 하늘은 더 이상 뿌옇지 않았다. 모든 것이 소름 끼치도록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구체적인 목표가 그를 안개 밖으로 끌어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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