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쓰는 경고
긴급한 밤
정혁제의 사무실은 깊은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창문 밖에서는 한겨울의 찬 바람이 유리창을 두드렸지만, 그는 그것을 들을 겨를조차 없었다.
책상 위에는 펼쳐진 지도, 보고서, 요주의 인물들의 이름이 적힌 노트가 어지럽게 흩어진 채였다.
그는 방금 변성자에게서 받은 정보를 곱씹었다.
박성표, 백정치, 조병수…
그놈들이 결국 움직였군.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무겁게 누른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이산갑 도련님… 그리고 고모님 안전.
정혁제는 펜을 잡아 들었다. 펜촉에서 잉크가 떨어져 서류 위에 작은 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곧장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절박한 글
철필이 종이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그의 글씨는 평소보다 더 거칠고 빠르게 쏟아졌다.
형님께,
박성표가 조병수를 고용해 이산갑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고모님께서 위험에 처하셨습니다.
조병수는 영광 전역에 정보망을 갖고 있으니 매우 위험합니다.
형님께서 직접 영광으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정혁제 올림
짧은 글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무거웠다.
그가 직접 말을 하지 않아도 신우혁은 알 것이다.
‘조병수가 움직인다’는 말이 어떤 파국을 의미하는지.
정혁제는 봉투를 집어 들고 입구의 봉인 도장을 꾹 눌렀다. 도장에 묻은 붉은 먹물이 바닥에 한 방울 떨어졌다.
그것은 피처럼 보였다.
비밀을 싣고 떠나는 자
“명재야!"
그가 부르자, 잠들어 있던 소년이 바깥방에서 뛰어 들어왔다. 얇은 솜저고리를 걸쳤지만 바람이 들어오는 문틈에 떨고 있었다.
“이 편지를 광주 진주관의 신우혁 선생께 전해라.”
정혁제는 봉투를 소년의 두 손 사이에 힘 있게 쥐어주었다.
소년은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나… 지금요? 나리, 광주까지는—”
“급한 일이다.”
정혁제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결의는 칼날 같았다.
“밤을 새워서라도 가야 한다.
단 한순간도 지체하면 안 된다.”
소년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책임감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깊게 숙였다.
“알겠습니다, 나리!”
두 손으로 편지를 움켜쥐고 그는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문을 여는 순간 찬바람이 들이닥쳤고, 먼지와 종잇조각이 책상 위를 휘젓고 지나갔다.
정혁제는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말했다.
형님… 제발 늦지 마십시오.
폭풍 전야
소년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정혁제는 홀로 남은 사무실에서 깊은숨을 들이켰다.
곧 있으면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움직임들이 꿈틀댈 것이다.
박성표의 사람들, 일본 순사들, 돈과 권력으로 움직이는 조병수.
그들 모두는 지금 이 밤, 같은 목표를 향해 간접적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목표의 중심에—
이산갑과 그의 가족이 있었다.
정혁제는 창가에 서서 흩날리는 눈발을 내려다보았다.
밤은 더욱 깊어졌고, 움직이는 그림자들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폭풍 전야의 정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