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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위의 도시 (3)

공정과 공평사이

by seungbum lee

일주일 후, 공공정책연구원은 대규모 공청회를 열었다. '청년고용촉진법 개정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자리였다.
광화문 근처 컨퍼런스홀에는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기업 인사담당자, 청년단체 대표, 노동조합 관계자, 학계 전문가, 그리고 일반 시민들.
무대 위에는 패널로 진우와 소희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진우는 개정안의 필요성을, 소희는 개정안의 한계를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대한민국의 청년 고용률은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칩니다."
진우가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화면에 그래프들이 떠올랐다.
"2025년 현재, 우리나라 청년 고용률은 45.3%입니다. OECD 평균 53.7%보다 8.4%포인트나 낮습니다. 이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기업들이 경력직을 선호하고, 청년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명확한 규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기업은 신규 채용의 30% 이상을 만 18세부터 34세까지의 청년으로 충원해야 합니다. 이것은 강제가 아닌 사회적 책무입니다."





청중석에서 박수가 나왔다. 주로 청년 단체 관계자들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맹점이 있습니다."
소희가 마이크를 잡았다.
"청년고용촉진법은 '청년'을 연령으로만 정의합니다. 하지만 청년은 동질적 집단이 아닙니다. 서울 주요대를 나온 청년, 지방대를 나온 청년, 전문대를 나온 청년, 고졸 청년. 이들은 모두 '청년'이지만 처한 현실은 천양지차입니다."
화면에 소희가 준비한 데이터가 떠올랐다.





"2024년 주요 대기업 신입사원 출신학교를 분석한 결과, 서울 소재 10개 대학 출신이 전체의 73%를 차지했습니다. 지방대 출신은 18%, 전문대 및 고졸은 9%에 불과했습니다. 이 상태에서 단순히 청년 채용 비율만 늘리면 어떻게 될까요? 이미 유리한 위치에 있는 청년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청중석이 술렁였다. 기업 관계자들은 난색을 표했고, 청년 단체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그렇다면 한소희 연구원의 제안은 무엇입니까?"
사회자가 물었다.
"저는 가중치 시스템을 제안합니다. 청년 채용 30%를 달성하되, 그 안에서 비수도권 대학 출신 10%, 전문대 및 고졸 출신 5% 이상을 포함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회의 평등입니다."
"그것은 역차별입니다!"





청중석에서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났다. 서울대 로스쿨 재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도서관 갔습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학원 한 번 안 다니고 혼자 공부했습니다. 서울대 합격했을 때 부모님이 우셨습니다. 우리 집도 부자가 아닙니다. 아버지는 중소기업 과장이고, 어머니는 마트에서 일하십니다. 근데 제가 서울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까?"
청중석이 다시 술렁였다. 일부는 고개를 끄덕였고, 일부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의 노력을 폄하하는 게 아닙니다."
소희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다만 구조적 불평등을 인정하자는 겁니다. 같은 노력을 해도 환경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차이를 사회가 조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식이면 끝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40대 남성이 일어났다. 중소기업 대표라고 했다.
"우리 회사는 직원이 50명입니다. 신규 채용이 연간 5명 정도인데, 그중 30%면 2명을 청년으로 뽑으라는 거죠? 거기에 지역 쿼터, 학력 쿼터까지 적용하라고요? 우리는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야 회사가 굴러갑니다!"
"능력이라는 게 과연 객관적일까요?"
소희가 반문했다.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가 능력의 증명입니까? 어떤 스펙을 쌓았는지가 능력의 전부입니까? 환경과 무관하게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럼 당신은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자는 겁니까? 동정심으로? 불쌍하니까 뽑으라고요?"
기업 대표의 말에 소희는 할 말을 잃었다. 진우가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우리는 실용적이어야 합니다. 한소희 연구원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너무 많은 쿼터와 예외는 기업에게 부담이 되고, 결국 청년 채용 자체를 기피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단순하고 명확한 규칙이 최선입니다."
청중석에서 또 박수가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업 관계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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