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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136)

낯선 땅

by seungbum lee

낯선 땅
중국 땅에 첫발을 디딘 백정치는 막막했다. 여기서 난징까지는 또 얼마나 먼 길인가. 게다가 중국어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우선 시장을 찾아갔다. 김상 돌이 쥐여준 은화 몇 냥으로 빵과 물을 샀다. 장사치에게 몸짓으로 난징 가는 길을 물었다.




"난징? 난징?"
장사치는 북쪽을 가리키며 무언가 중얼거렸다.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기차를 타라는 뜻인 것 같았다.
역을 찾아가는 데만 반나절이 걸렸다. 작은 역이었지만 사람들로 붐볐다. 매표구에서 한참을 고생한 끝에 난징행 기차표를 샀다.
기차 안은 피난민과 상인들로 가득했다. 백정치는 구석 자리에 몸을 웅크렸다. 창밖으로 중국 대륙의 풍경이 펼쳐졌다.
넓은 평야, 작은 마을들, 강과 산. 조선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이제 이곳이 자신이 살아야 할 땅인가.
밤이 되자 기차 안은 어둠에 잠겼다. 백정치는 가슴의 편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종이가 조금 젖어 있었다. 폭풍 때 바닷물이 스며든 것이다. 하지만 글씨는 아직 읽을 수 있었다.


난징
이틀 후, 기차는 난징에 도착했다. 거대한 도시였다. 높은 건물들, 넓은 거리, 수많은 사람들. 백정치는 압도당했다.
우선 조선인 거류지를 찾아야 했다. 김한오를 찾으려면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가야 했다.
거리에서 조선말 간판을 발견했을 때의 안도감이란. 작은 식당이었다. 들어가자 주인아주머니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어머, 새로 오신 분이에요? 어디서 오셨어요?"
"전라도 영광에서 왔습니다. 김한오라는 분을 찾고 있는데요..."
"김한오? 김상 돌 씨 아들 말하는 거예요?"
"예! 아십니까?"
"그럼요. 여기서 유명한 사람인데. 무역 사업을 하고 있어요. 저기 시장 쪽에 사무실이 있어요."
백정치는 가슴이 뛰었다. 드디어 김한오를 찾을 수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알려준 곳으로 가자 '한오상사'라는 간판이 보였다. 깨끗한 건물이었다. 김한오는 꽤 성공한 것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사무실 안에서 서른 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장부를 보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저는... 백정치라고 합니다. 영광에서 왔습니다."
"영광에서요? 그럼 우리 아버지를..."
"예. 댁의 아버님께서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백정치는 가슴에서 편지를 꺼냈다. 구겨지고 물에 젖은 편지. 하지만 그 안에는 김상 돌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김한오가 편지를 뜯어 읽었다. 그의 얼굴에 여러 감정이 스쳐갔다. 그리움, 안타까움, 결연함.
"우리 아버지가... 건강하시다니 다행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제가 살았습니다. 아버님은 저에게 선생님을 찾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김한오는 편지를 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은인이라면 제가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우선 숙소부터 마련하겠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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