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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138)

곧올재를 넘어 - 義人 오상호를 찾아서

by seungbum lee

곧올재를 넘어 - 義人 오상호를 찾아서
새벽 동굴을 나서다
동굴에서의 긴급회의를 마친 이산갑은 산돌과 함께 용바위를 내려왔다. 동이 트기 전,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이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학당으로 향하지 않고 묘량(卯良) 마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바위틈 사이로 난 비좁은 산길은 밤이슬에 젖어 몹시 미끄러웠다. 산갑은 익숙한 듯 앞장섰고, 산돌은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며 그 뒤를 바짝 쫓았다. 간혹 밤새들이 푸드득거리며 날아오르는 소리 외엔,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만이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갈랐다.
"산감님, 이 시각에 묘량으로 가시는 겁니까?"
산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 오상호 아제를 뵈어야 한다."
이산갑의 목소리는 굳건했다.
오상호(吳相鎬). 그는 이산갑의 아버지 이충헌(李忠憲)이 생존해 계실 때 가장 충실한 청지기(廳直)였던 인물이다. 포졸(捕卒) 출신의 어른들과 두터운 교류를 쌓아온 그는 1919년 3·1 운동 때 영광 장터에서 앞장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다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모진 고문과 투옥의 세월을 견뎌낸 그는 출소 후 세상과의 관계를 끊은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었다. 오상호는 묘량 마을에서 묵묵히 농사에 전념하며 대농(大農)의 꿈을 이루었고, 그렇게 모은 재산의 상당 부분을 한도회(韓道會) 자금으로 기부해 왔다. 이산갑을 통해 전달되는 그의 독립자금은 만주의 독립군에게도, 국내 비밀조직에게도 큰 힘이 되었다.
"오 아제는 정의파(正義派) 시다."
이산갑이 곧올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겉으로는 평범한 농부처럼 보이지만, 그분의 가슴속에는 독립에 대한 열망이 활활 타오르고 있지."
산돌은 오상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마을 어른들은 그를 '묘량의 義人'이라 불렀다. 투옥의 고초를 겪고도 꺾이지 않은 정신, 그리고 말없이 독립운동을 후원하는 그의 행적은 은밀하게 전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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