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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140)

오상호의 집

by seungbum lee

묘량 마을, 오상호의 집
마을에 들어서자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사람들은 잠들어 있었다.
오상호의 집은 마을 어귀에 있었다. 높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기와집이었지만, 대문은 소박했다.
이산갑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오 아제, 저 이산갑입니다."
잠시 후,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문이 열리며 육십 줄의 노인이 나타났다. 오상호였다.
"이 선생, 이 새벽에 무슨 일이시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힘이 있었다. 투옥 시절의 고문으로 한쪽 다리를 절었지만, 그의 눈빛만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급한 일이 있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들어오시오. 산돌이 도 함께."
오상호는 두 사람을 안채로 안내했다. 방은 깨끗하고 단정했다. 벽에는 서예 작품 하나가 걸려 있었다.
克己復禮 (극기복례)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간다. 오상호의 좌우명이었다.
은밀한 대화
"차나 한 잔 하시오."
오상호가 보리차를 따라주었다. 이산갑이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입을 열었다.
"아제, 어젯밤 한재호 동지가 만주에서 왔습니다."
오상호의 눈빛이 변했다.
"한재호가? 홍범도 장군의 부하인 그 사람 말이오?"
"그렇습니다. 장군님의 밀명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산갑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고 목소리를 낮췄다.
"장군님께서는 조선 내부의 저항을 계속 이어가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잠시 멈췄다가 이어갔다.
"자금이 필요합니다. 만주의 독립군도, 국내의 지하조직도 모두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오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얼마나 필요하오?"
"이번에는 특히 많이 필요합니다. 한재호 동지가 다시 만주로 돌아갈 때 가져가야 하는데..."
"금액을 말하시오."
오상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오백 원이면 되겠습니까?"
오백 원. 당시로서는 거금이었다. 소 몇 마리를 팔아야 마련할 수 있는 돈이었다.
오상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천 원을 드리겠소."
"아제!"
이산갑이 놀라 말했다.
"그것은 너무 큰 금액입니다. 아제 형편에..."
"걱정 마시오."
오상호가 손을 저었다.
"나는 자식도 없고, 이 늙은이 혼자 먹고사는데 큰돈이 필요치 않소. 이 돈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쓰인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값진 쓰임이 아니겠소?"
산돌은 그 광경을 보며 숙연해졌다. 이것이 진정한 애국자의 모습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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