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는 place of angeles로 “천사들이 머무르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 자체만 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아름다운 L.A. 는 미국 서남부에 위치해 있다. 겨울철이면 토네이도가 미국 중남부를 강타해 마을 전체를 흔적도 없이 집어삼켜 버리고 동북부는 폭설로 항공편이 하루에만 수천 편이 취소되어 아수라장이 되기도 한다. 그뿐인가, 여름철에는 허리케인이 동부, 남부 해안가에 접근하면 피난 행렬이 마치 아프가니스탄 이나 이라크 전쟁 난민을 연상케 하고,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면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돼 버린다. 그런 미국에서 서남부에 위치해 있는 이곳 L.A. 는 완전히 다른 세상 별천지다.
두 시간 정도 운전을 하여 빅베어라는 곳을 오르면 수많은 사람들이 스키를 즐기고 있고, 이삼십 분 정도 운전하여 해변을 찾으면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핑(surfing)족들이 바다에 부표 물처럼 떠서 파도를 기다리고 있다. 겨울과 여름이 두 시간 운전거리에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일 년 내내 반바지에 반팔 셔츠로 해변가 나 공원에서 조깅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골프를 치며 사는 모습은 문자 그대로 paradise 지상의 낙원이다.
이런 곳을 세상 사람들이 탐내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 일본에서, 중국에서, 인도에서, 이웃 멕시코에서 이민자들이 찾아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기네들만의 타운도 있다. 코리아타운, 리들 도쿄, 차이나타운, 인디언 스트리트, 허지만 멕시컨 타운은 여태껏 들어보지 못했다. 다양한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이곳에서 백화점과 같은 샤핑몰에서 일주일만 시간을 보내면 전 세계인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런 곳에서 서비스 업종 자동차 타이어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인종을 접하다 보니 그들 나름대로 샤핑하는 방법이나 매너 또한 인종만큼이나 독특하고 천태만상이다.
먼저 우리 샵을 찾아온 교포 한 분의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손님이 백인이다 보니 모처럼 한국 손님이 찾아오면 반갑다.
-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 네, 타이어를 교체하러 왔습니다. 한국산 K 제품으로 얼마나 합니까?
- 4개에 $570 되겠습니다
@ 왜 그렇게 비싸요?
- 혹시 다른 곳에서 가격을 알아보기라도 하셨는지요?
@ 우리 집 근처 가격은 훨씬 좋아요
- 가격이 얼마인데요?
@ 이 보다는 좋아요
- 가격을 말씀해주셔야 제가 그 가격을 맞춰 드릴 수 있는지 검토해 보지요
@ 아무튼 여기 가격보다는 좋아요
- 선생님, 그러시면 더 좋은 가격을 제시한 곳으로 가 보시지요
@ 여기까지 왔으니 여기서 타이어를 교체하고 가지요.
타이어 교체 작업이 다 끝나고서
- 선생님 결재를 해주시겠습니까?
손님은 크레디트 카드를 카운터에 내던지다시피 하면서
@ 여기까지 왔는데 기름값도 안 빠지는구먼?
그렇게 계산을 하고 떠난 그 손님이 그때도, 한참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동안 미국 손님들에게 익숙해진 나, 한국을 떠나온 지 30년이 흘러버린 지금, 모처럼 찾아온 이 손님은 나에게 조그마한 마음의 상처라도 주고 간 것일까? 아니면 한국 손님과 마주칠 기회가 많지 않은 이 조그마한 동네에서 모처럼 찾아온 손님으로부터 순진한 어린 소년처럼 동포애라도 기대했던 것일까? 사람 많은 곳에서 낭패라도 당하고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얼굴이 벌겋게 홍당무가 되어 서성 거렸던 어느 옛날이 겹친다.
"이처럼 무례한 대화 화법이 우리의 것이었던가?" 그래, 언젠가 들어본 낯설지 않은 표현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읍내 5일장에 갔더니 물건을 흥정하시던 어머니께서 “우리 모자(어머니와 아들) 차비라도 빼 주셔야지?”라고 하셨던 말씀과 크게 다르지가 않다. 다만 오늘 찾아온 손님은 표현이 거칠었다고나 해야 할까?
상대방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분 내키는 대로 말을 내뱉는 가난했던 시절은 매너를 사치라고 할 수 있을지언정 이곳 미국까지 와서 아직도 옛것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를 볼 때면 좀 더 다듬어진 시민이었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생각이다. 그래 “비즈니스 하면서 있을 수 있는 일이야” 하고 잊어버리려고 노력도 해본다. 오늘따라 하루해가 왜 이리도 길게만 느껴지는지….
모르면 몰라도 오늘 찾아온 손님은 디스카운트라도 받아볼 속샘으로 나름 거짓을 꾸며낸 것 같은데 그런대로 헤아려 줄 수도 있다.
어느 날 찾아온 중동 아랍계 손님은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가족들 안부도 묻는다. 글쎄 우리 가족 안부를 물을 만큼 우리가 절친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중동인들은) 으례껏 가족 안부를 묻는다. 오늘의 목적 달성을 위한 밑자락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타이어 두 개가 필요하다기에 $350이라고 했더니 $300에 맞춰 달란다. 처음 찾아온 것도 아닌데 매번 올 때마다 가격 때문에 나를 힘들게 한다.. 나는 손님에게 예전과 다름없이
-잊지 않고 찾아 주심에 감사하고
- 우리 동네에서는 가장 좋은 가격임을 상기시켜야만 했다
이윽고 작업이 끝나고 계산을 부탁했더니 현금 $300만 내던지면서 "이 정도면 손해 나는 장사는 아닐 거야" 하면서 가 버린다. 그렇게 무례하게 하고 가버린 손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 내 돈 $50 떼먹고 도망간 놈으로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지
- 참고 기다렸다가 다시금 찾아올 때 받아내야 하는지
몇 안 되는 중동계 손님이 있는데 상대 하기가 항상 버겁다. 그들은 가격 문제로 실랑이를 하면서도 우리와 같이 심각한 표정으로 진지 하지도 않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마치 농담하듯 대화한다. 서너 번 시도해보고 안되면 포기하련만 투견 불도그(bull dog)처럼 5분이고, 10분이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땐 “아 싫다”라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온다. 인근에 보다 더 좋은 가격이 있는지를 둘러보라고 권유하면 “나는 당신이 맘에 들어요, 그리고 가격이 좋다 는 것도 다 알고 있으니” 가격을 조금만 더 깎아 달라는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50이라도 절약하여 가족들 저녁 식사값이라도 마련할 셈법이라면 왜 내가 당신 내 가족 식사비를 계산해야 하는지? 아니면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웠던 그 유명한 아라비안 상인의 후예들 인지라 가격을 흥정하지 않고 물건값을 지불하면 왠지 성에 차지 않는 건지? 분명한 건 21세기를 살고 있는 미국에서 이러한 잡스러운 샤핑을 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다.
그러나 나의 일상은 샤핑할줄 아는 미국 손님들 때문에 피곤함보다는 즐거움이 더 많다.
그들은 샤핑을 위해
- 먼저 이웃이나 친지들로부터 추천을 받고
-추천을 받은 후에도 우리와 같이 곧장 찾아가는 게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추가로 가격견적을 받아 비교, 검토해본다.
우리 샵을 찾아온 손님들을 보면 우리네 가격견적을 받아 들고선 "우리 샵이 처음 인지라 더 돌아다녀 보고 나서 당신네 가격이 경쟁력이 있으면 다시 돌아 오리다" 하고 떠나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우리네 가격견적을 받아 보자마자 곧바로 "지금 타이어를 교체해줄 수 있어요" 하고 묻기도 한다. 이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부터 몇 개의 가격견적을 받았던 터라 바로 결정을 하는 것이다. 그들 나름대로 준비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대화가 필요하지 않다.
전문지식이 없는 손님들은
- 우리와 같은 전문가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 주어진 예산 범위 내에서 제품 추천을 부탁하기도 한다.
그러면 “당신이 오히려 현명합니다” 하고 마음속으로 칭찬도 해준다.
계산을 하고 샵을 떠나는 그들은 한결같이 기분이 좋아 보인다. 이게 거래가 아닌가 싶다. 파는 사람은 보람을 느끼고 사는 사람은 행복해야 한다. 그들은 떠나면서
- 당신의 훌륭한 서비스에 감사합니다. 내 가족이나 친지들 에게도 당신을 추천하겠습니다
- 낡은 타이어를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당신이 나를 구했구려. 이제부터는 당신이 내 타이어를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칭찬을 하고 떠난 그들은 따끈따끈한 커피나 시원한 음료수를 사들고 와서 다시 한번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가 하면 자기 집 뒤뜰에서 싱싱한 오랜지를 따다 주는 사람도 있단다. 한국 정서로 봤을 땐 정이라곤 1%도 없어 보이던 그들도 샤핑 후에 느끼는 행복을 이렇게 표현한다. 어느 한국 교포와 같이 왕복 기름값이 아깝다고 짜증을 내는가 하면, 가족들 저녁 식사비를 위해 $50불이라도 깎아보려고 하는 중동인과는 사뭇 다른 샤핑을 하는 미국 사람들. 나는 그들과 함께 세상사는 재미를 느끼면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