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가치, 사회 기여도
만삭이 된 아내의 배를 쓰다듬으면서 부부는 태어날 아기와 벌써 대화를 시작한다.
이름이라도 이미 지었다면
"엄마, 아빠는 우리 지은이를 어서 빨리 만나고 싶어. 아직 너를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알아 우리 지은이가 엄마를 많이 닮아 깜찍한 공주라는 것도"
두 부부는 지은이에 대해서 퍼즐 맞추기도 해 본다. 시원한 이마와 웃으면 반달 같은 매력적인 눈은 엄마 껏, 클레오파트라와 같이 우뚝 선 코는 아빠 껏.
출산 예정일을 기다리고 있는 엄마는 책을 가까이하지도 않던 사람이 아기를 위해서라면 독서도 해보고, 음악도 듣고, 마음 씀 이도 착하게 하려고 나름 노력을 한다. 가정 형편이 좋은 집은 “태교 학원”이라는 것을 다닌다. 아기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학원 문턱을 드나들기 시작한 셈이다.
하늘이 내려주신 선물을 기다리고 있다가 아기를 만나면:
“참으로 사랑스럽구나. 만나서 반가워.” 해야 하는데
왜? 첫 일성이
“그 녀석 아주 영리할 것 같아”
시간이 갈수록 아이에 대한 극성은 더해만 간다. 국민학교 때부터 학군을 따져 이사를 하고, 생활비를 줄여 가면서 까지 학원을 보내야 하는 우리의 현실에 어떤 변(논리)이 있을까? 부모의 변은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다.
왜 그렇게도 극성 이냐고?
내 새끼니까
그러나 부모가 지향하는 것과 자식이 좋아하는, 하고 싶은 게 다르다면
“애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르니까.
인생 선배로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끌고 다닌단다.
병자가 용하다는 한약방을 찾아 헤매듯이 자식에게 좋다는 것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모두 다 시도해본다.
학원 보내기,
그것도 시험을 치러서 합격한 학생만 받아주는 소문난 학원에 넣어보려고 애쓰고
과외선생 붙여주기,
보수는 신경 쓰지 말고 성적만 끌어올려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이제
@ 먹고사는 문제?
옛날과 같이 절박하지도 않고
@ 출세?
돈에 탐욕하는 판사, 검사, 정치인들은 재벌들이 흔드는 돈다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조아리다 부패에
연루되어 망신살이 신세가 되고
@ 의사?
격무에 시달려 병원에 영어의 몸으로 갇혀있는 그들을 보았으니
이제는 조금 느긋하게 자식들이 커가는 것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답으로 미국에서 국민학교 때부터 두 아이의 아빠가 될 때까지 지켜봐 왔던 세 젊은이의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1. 괜찮은 L.A. Times 기자
할아버지는 멕시코 출신, 할머니는 아이리쉬 출신인 이민 3세 조셉이다 그런데 개구쟁이 친구 2명이 있는데 한 명은 러시아 출생 1.5세, 다른 한 명은 한국 출생으로 역시 같은 1.5세다. 1.5세인 친구 둘이서 조셉 을 멕시칸이라고 놀려대면 기가 죽어 맥을 못 추는 순진한 친구다.
중학교 때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이복 누나와 같이 아빠 밑에서 큰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마쳐야만 했다. 학업 성적은 그저 그러했다. 같이 놀던 개구쟁이 친구들은 UC Irvine, UC L.A., UC Berkeley 그런대로 괜찮은 서부 대학들에 진학했으나 조셉은 학교성적도 미진 하려니와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어 곧바로 돈벌이를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밤이면 집 근처 커뮤니티 컬리지를 다니면서 학업에 끈을 놓지 않고 계속 공부를 했다. 이곳 커뮤니티 컬리지는 무료나 다름없다. 2년 후 커뮤니티 컬리지를 마치더니 UC L.A. 4년제 대학 3학년으로 편입한다. 물론 학비는 지난 2년간 열심히 모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4년제 대학을 마치고 나서도 이렇다 할 직업을 못 구하여 동네 조그마한 신문사(city news)에서 칼럼을 쓰며 저널(journal)에 대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하더니 3년이 지나니까 카운티 (필동=city, 중구=county, 서울=L.A.) 신문사로 업그레이드하여 간다.
조셉이 쓴 신문 칼럼을 읽어보니 보통이 아니다. 훌륭하다. 다시 3년이 지나니까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있는 L.A.Times 기자로 발탁되어 다시금 자리를 옮긴 것이다. 송곳은 어디에 있던 뚫고 나오게 돼 있다. 지금은 배테랑 사회 기자로 자리를 잡았단다. 이제 결혼할 준비가 됐다면서 와이프에게 청혼할 여자 친구 반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서 도와준 적이 있다. 일 년 전에 CNN 기자 겸 리포터와 결혼하여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로망인 아이비 학교 출신도 아니요 저널로 유명세가 있는 시카고 대학 출신이 아니더라도 낮은 곳에서 출발 자신을 꾸준히 관리하고 노력하면 그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미국 사회. 이게 오늘의 위대한 국가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다음 계획이 무엇 이냐고 물었더니 범죄 퇴치를 위한 조직에 합류하여 사회에 조그마한 기여를 하고 싶단다
2.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아버지가 운영하고 있는 영세 캐비닛 비지네스에 도우미로 일하다.
입학 허가서를 받기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UC Irvine에서 4년제 대학을 마쳤으나 본인이 원하는 잡을 못 찾아 곧바로 UC L.A. 대학원으로 진학한다. 4년간 공부를 더 하고 나왔는데도 이번에는 금융위기로 미국이 홍역을 치르고 있는터라 잡을 못 찾아 하는 수 없이 아버지가 운영하는 아주 영세한 캐비닛 비지네스에 도우미로 따라다니게 됐다. 아버지는 이민 1세로 지난 수십 년간 종업원 2명을 데리고 비지네스를 운영해 왔는데 이 젊은 친구가 따라다녀보니 성장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 취업을 포기하고 아버지 밑으로 들어가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사무실이 없어 커피숍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인터넷으로 영업을 하고, 고객을 찾아다니더니 4년 만에 종업원을 15명으로 늘리는 상당한 규모의 회사로 키워내는 대단한 실력을 발휘한다.
이 젊은 친구는 집중력이 좋고, 매사가 긍정적이다. 그와 같이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한 사람들이 매우 즐겁다. 하루는 우리 집에 놀러 왔는데 얼굴에 여드름이 심하여 안타까운 마음에
“알렉산드리아, 여자 친구라도 생겼나 봐?” 했더니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여드름이 이렇게도 나를 괴롭히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농담으로 응수한다. 이런 농담은 한국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이곳 미국에서 듣다니 놀랍다..
4년 만에 20만 불 짜리 비지네스를 백오십만 불 짜리로 키워 매각한다. 조건도 대단하다, 자기 아버지가 은퇴하겠다고 선언할 때까지 고용해주는 조건이다. 이 친구는 집도 한채 장만하고, 아버지 취직도 시켜주고, 본인은 백만 불 밑 전으로 이백 오십만 불 짜리 새로운 비지네스를 독자적으로 시작하면서 오 년 이내애 은행 빛 백오십만 불을 갚아 버리겠다고 선언했다. 벌써 3년이 지났는데 팬데믹 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단다. 대견하다.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하여 종업원 2명의 영세한 아버지 사업장에 도우미로 따라다닌다면 우리 부모는 어떠했을까를 상상해본다.
* 자식농사 망쳤다고 한탄하거나
* 남의 이목이 있으니 차라리 집에서 놀고먹는 게 더 낫다고 투덜거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젊은이의 부모는 크게 걱정하지 않고 본인이 무엇인가를 하지 않겠냐면서 느긋해하시더니 결국은 묵묵히 기다려 주는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비지네스를 성공적으로 키워가고 있으니 자랑스러울 수밖에
3. 의대 입학 허가서를 부모에게 보여주고 나서 환경 전문가가 되다.
베버리 힐만큼 부촌은 아니나 그에 버금가는 부촌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2세다. 여기도 한국 부모님들이 공부에 대해 성화가 대단하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때 모두들 학업성적이 좋다.
원하는 대학을 진학하고 나서 이 친구는 환경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가 의대를 가야 한다고 집요하게 강요를 하는 것이다. 부모의 성화를 꺾을 수가 없어 이이는 의대로부터 입학 허가서를 받아 엄마, 아빠에게 보여 드리고 “내가 해 드릴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입니다.” 그러고 나서 환경에 대해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의대를 가고 싶어 하는데 왜 싫어하느냐고
우리 부모님 말씀은 “의사가 안정적인 직업이고 돈도 괜찮게 버는 직업 “이라고 강요하시는데
저는 생각이 달라요.
첫째, 의사는 나와 케미가 맞아야 하고
둘째, 돈이 목적이라면 의학을 전공할게 아니라 비지네스를 공부해야지요
셋째, 안정적인 직업?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면 그 무엇을 하더라도 먹고사는 것은 보장되는
사회 이잖아요
누가 이 친구를 저토록 똘똘하게 만들었을까?
분명코 부모는 아닐지어다.
이 젊은이는 자기 부모님을 조금은 한심스럽게 보는 눈치다. 보아하니 돈은 좀 있는 것 같은데 하는 일 없이 10년 이상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고작 하는 것이라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골프 치는 것이 전부란다. 무슨 생각으로 사시는지 모르겠다고 푸념이다.
바로 이 사회가 이 젊은이를 바른길로 인도하고 있다고 본다.
이 사회는 개성과 가치를 중요시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는 의사, 변호사를 우러러보지도 않고 그냥 여러 직업군 중에 하나일 뿐이다.
자동차 정비 센터에서 일하는 메케닉을 보면 자부심이 대단하다. 자동차 수리와 관련한 자격증만도 4-5종류를 갖고 있으며 직장과 집에서 밤낮없이 자동차를 만지작 거리고, 공부한다. 걱정된다 와이프보다는 자동차를 더 사랑하니 저러다 쫏겨 날까 봐. 수입도 넥타이 매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화이트 칼라보다 좋다.
G.M.(General Motors)에서 30년 동안 기술자로 일하고 은퇴한 한 미국인은 자기 몸에는 G.M. 의 피가 흐르고 있다며 오늘의 G.M. 을 마치 자기가 일구워 낸 것처럼 자랑이다. 이렇듯 모든 분야에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으며 분야별로 학교를 찾아가 끊임없이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미국인들을 보면 바로 오늘에 주인공들이 아닐까 싶다.
이제 우리도 자식들이
* 무엇을 좋아하는지 지켜보고
* 자기가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 주고
* 그 결정이 무엇 이든 간에 지지해 주는
부모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