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품격이 있는 언어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격에 맞는 단어를 취사선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나보다 어리거나 같은 또래면 “너”
(작장에서) 상급자에게는 “선배”
연장자에게는 “어르신“
사랑하는 연인에게는 “그대 또는 자기“
그러나 영어로는 you 로 이들을 다 퉁친다. 그런 면에서는 영어가 참 쉽고 편리하다.
단어의 선택이 적절치 못하면 지적을 받기도 하고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직장에서 초급간부 시절이었다. 전무님 께서 불러 "일전에 지시한 내용이 어떻게 돼가고 있냐"라고 묻기에 "부장님께 결재를 올렸습니다" 했더니
문 과장, 당신 부장보다 직급이 더 높은 상사 앞에서는 부장이라고 해야지 부장님이라고 하지 않는 게 맞는 표현이라고 바로잡아 주셨던 기억이 새롭다.
나이가 나보다 7-8년 연장자이신 분들과 식사를 하면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했더니
문 선생, 제가 아니고 내 얘기는----
시인 이자 수십 년 동안 글을 써오신 분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나는 마음속으로만 내가 맞을 건데? 그러나 우리끼리 논쟁으로 결론을 내릴 수가 있을 것 갖지 않아 "한글 표준 협회"에 질의서를 보냈다. 돌아온 답은 내 표현이 맞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에 익숙해 있던 사람이 미국에 살면서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며느리를 맞아들였다. 초창기에는 만나면 허그하는 것도 부자연스럽고 영어가 짧아 묻는 말을 못 알아듣고 대답을 않고 있으면 상대방이 모멸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어 대화는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대화 말미에 며느리가 툭 던진 한마디
You guys have any special plan for the coming Thanksgiving holiday? (돌아오는 추석에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으셔요?)
you guys 란 표현이 거슬린다. 나는 이 단어가 친구나 아랫사람들에게 편하게 쓰는 용어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부모에 대해 적절치 못한 단어 선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들이 떠난 후 어쩌면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작은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너네 형수 April 이 엄마 아빠에게 you guys 라고 할 수 있나?
흠! 왜 그랬을까? 어머니 아버지 정도는 한국말로 할 줄 알잖아?
나는 둘째 아들로부터 그게 적절한 표현인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아들은 어쩌면 형수가 어머니 아버지라고 불러주지 않은 게 섭섭했다는 것으로 이해했을 수도 있다. 설령 적절치 못한 표현 일지라도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원치 않기에 즉답을 피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에는 내가 운영하고 있는 비즈니스에 고객 중 한 분인 치과의사에게 물었다. 이분은 세미나를 위해 일 년에 한 번씩 두 달 일정으로 한국을 다녀오신 분이다.
나는 불편하지 않아 그러나 네가 못마땅해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벌써 한국에 여러 번 다녀오신 분이라 며느리와 시부모와의 정서를 알고 있고 언어에 대한 문화 차이도 알고 있다는 답이었다.
며느리는 그 후로도 잊힐만하면 대화 중에 you guys 란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불편하다.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마음을 고쳐먹고 며느리의 표현이 적절치 못했다면 그녀에게 시정해 줄 것을 요청하고 싶었다. 미국에서는 내가 불편하면 상대방에게 알려 주는 게 옳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께 여쭈어볼 기회가 주어졌다. 그녀의 답은
며느리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나 보지?
선생님은 세대 간의 표현의 차이로 답을 주셨다. 나 같았으면 you guys 가 아닌 you 혹은 first name을 불렀을 거라는 얘기다.
문화가 다르고 새대가 달라 나에게는 다소 불편한 표현으로 들릴지라도 나를
폄하하는것이 아니라면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쓰이고 있다면
받아 들여야만 하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