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솔직했을까. 이제 와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 있겠냐만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우리의 끝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오래전 당신이 선물로 준 핸드백 손잡이가 어느새 해진 것을 보며 제 아무리 괜찮았던 세월도 켜켜이 얹어 있는 감정을 이기지는 못한다.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밤에는 더욱 그렇다.
초봄에 내리는 비가 쏴아아 아- 바깥에서 사방으로 뒤엉킨 채 흩뿌려져 내리는 빗물이 안에서 듣고 있으면 꼭 노랫소리 같다. 이럴 땐 이소라의 노래가 생각난다며 <Track 8>을 틀었다. “죽은 그가 부르는 노래 술에 취해 말하는 노래 간절히 원해” 슬픈 가사와 상반되는 멜로디가 이별노래 치고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경쾌한 느낌이다.
잠시 숨 돌릴 틈이 없고 슬퍼할 겨를도 없다면? 어릴 적 삼촌의 장례식에서 할아버지는 울지 않으셨다. 그 뒤로 2년 뒤에 할아버지는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다. 그동안 남몰래 마음에 병이 생긴 건지 마지막 순간까지 아파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그때 슬픔에도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마음의 각오 혹은 감당할 만큼의 슬픔.
모두가 낯선 이 별에서 모든 사람과 사랑이 영원하다면 조금 덜 충격적이진 모르겠지만 아주 잠시동안 나 혼자가 아닌 함께라서 좋았고 그게 당신이라서 참 다행이었다는 말을 빙자로 지난 이별이야기를 툭툭 꺼내 “별일 아니었어” 술안주로 곱씹고 있다.
만약에 언젠가 다시 이별을 마주하게 될 때, 그때는 입가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조차 좋았다며 사소한 농담과 장난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다정한 작별을 나눴으면 좋겠다. 혼자서 남겨진 방처럼 텅 빈 마음이 갈피를 차릴 도리가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