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지난 몇 년간에 봄은 시기질투의 대상이었다. 나른한 햇살, 청명한 하늘, 사방에서 흩날리는 꽃가루가 스스로를 가렵고 가엽게 만들었다.
봄, 겨울과 이별하고 낮은 온도로부터 환승하는 계절. 가끔씩 나의 육감은 본능적이다. “때마침 봄이구나” 싶을 때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건조하고도 메마른 땅 위로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질 때 살아숨은 것들이 움트고 있다.
봄이 온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길고 긴 침묵을 깨고 다시 제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 2월에 매화꽃 봉오리가 움트기 시작하듯 온갖 감정의 응어리라던지 해결되지 않은 채 하얗게 응고되어 있는 갈등의 흔적이라던지 그런 것에서 벗어나 새로이 피어나는 것.
봄비가 오늘 전국적으로 내린다길래 출근길에 집으로 돌아가 도어록을 열었다. 현관에 있는 우산을 챙기면서 “이번 겨울은 유난히 길었지” 일기예보에서 오늘이 경칩이랬다. 초목의 싹이 돋아나고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절기.
봄에는 만물도 사람도 긴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이즈음이 되면 겨울철의 대륙성 고기압이 약화되어 한난이 반복된다. 그리하여 기온이 날마다 상승하여 봄으로 향하는 것인데 나의 지난봄은 사실상 봄이 아니었다.
마침내 오늘, 절기가 경칩이 되어서야 나의 모든 것이 봄에 이르렀음을 직감했다. 겨울이 지나갔다. 이제야 그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봄은 새로이 피어나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