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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진 Mar 12. 2024

헤아려


오후의 아늑한 거실의 소파처럼 한 사람의 마음이 넉넉하길 바랐다. 봄이 오면 유독 더 바라는 포근한 감정이 동풍을 탄다. 한 번쯤은 아무런 상처 없이 온전한 마음인 것 마냥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봄이다.


한 번은 경험이고 두 번은 반복적인 습관이다. 긴장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깨무는 버릇처럼 자주 반복하는 만남은 불안했고 매번 이별의 끝은 어려웠다. 끝끝내 덜 주고 덜 받는 방법에 대해서만 고집했다면 여태까지 나의 마음은 굳게 닫혀 있었을 것이다.


“경험은 많을수록 좋은 것일까요?”

전에 독서 모임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눴던 적이 있었다. 그중 다른 분의 경험에 의하면 경험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며 오히려 트라우마가 생겨 안 좋은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마치 서핑 보드를 타고 밀려오는 파도를 찾아 바닷물에 빠져 들어가는 파죽지세로 지나간 일들을 수면 위로 떠올렸다 —A는 습관적이었다. 사탕과도 같은 달콤한 말들로 마음을 현혹시켰다. 사랑을 전제로 자신의 틀 안에 가두었고 금방이라도 벗어나면 이내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때로는 유리창 보다 불투명한 사람의 속내가 무척 괘씸하였다.


때마침 그해 봄, 4월의 거리는 낙화하여 눈처럼 하얗고 제아무리 꽃이 아름다워도 바람이 불면 분분히 떨어져 내렸다. 밤에는 탄천을 걷다가 누구라도 불행하길 바랐던 몰지각한 심상이었다. 불안하고 불완전한 마음으로 사는 건 불행한 것이었다. 그해 내가 살았던 계절은 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니었다.


그 후 몇 번의 꽃잎이 떨어지고 나니 거듭 봄이다. 이제는 달콤한 꿈도 없고 약삭빠르게 제 앞만 가리고자 회피하지도 않는다. 봄이 오니 한낮 볕에 방안이 따끈하다. 제철을 맞아 벚꽃이 만개하면 밖으로 나와 걸어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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