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효진 Mar 19. 2024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하루는 길고 일 년은 짧다. 기억이란 건 쉽사리 지워지지 않고 추억은 영원히 존재할 것 같다. 어떤 사물, 이름, 장소가 계절마다 떠오르는 것.


그때 내가 살던 시골은 편의점이라는 말이 부끄럽게 매우 작고 허름했다. 어쩌면 구멍가게라는 말이 더 어울렸고 동네 아이들은 가끔씩 그곳에서 과자나 초콜릿을 훔치기도 했다. 나 역시 껌이나 사탕 같은 불량식품을 주머니에 넣고 냅다 도망쳤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 보면 주인아주머니는 알고도 가만있으셨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그게 범죄라고 부를 만큼 냉엄한 시대는 아니었던 것 같다(물론, 남의 물건을 훔치는 건 엄연히 도둑질이다) 적어도 “ㅇㅇ엄마”, “ㅇㅇ아빠” 같이 아이 이름을 앞에 부르면서 콩 한쪽도 나눠 먹는 정이 그때는 존재했으니까.


시골에 사셨던 나의 할머니는 매달 오일장에 나가면 각종 채소와 제철 과일을 사 오셨다. 그리고 늘 항상 과자는 ‘바나나킥’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아마도 내가 그 과자를 제일 좋아하는 줄 아셨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할머니는 줄곧 바나나킥을 사 오셨다. 한 번은 고등학교 때였는데 그 과자가 물렸던 탓인지 할머니께 괜한 짜증을 냈다. 나는 그때가 사춘기였던 것 같다. 학교를 마치면 곧장 방안에 처박혀 mp3만 듣고 있었으니까. 점점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도 끊길 때쯤 낯선 봉투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롯데리아> 시골에 하나밖에 없던 햄버거 프랜차이즈였다. 시골 버스는 배차간격이 길었다. 할머니는 겨우 나 때문에 쌈짓돈을 꺼내 햄버거를 사 오셨던 것일까. 할머니의 돈과 시간은 대부분 나에게로 향했고 나는 그게 당연할 줄 알았으며 그 사랑이 과분한 줄 몰랐다.


지금도 꿈속의 시골은 바로 어제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금방이라도 “효진아” 하고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부를 것 같아서 꿈속에서도 귀를 더 기울이게 되는… 아마도 할머니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싶은 마지막 그리움일 게다.


봄이면 할머니는 연분홍색 점퍼를 입으셨다. 옷이 정돈된 자태로 마치 매화꽃 나무처럼 희고 고우셨다. 이제는 헤아릴 길 없는 아득한 시간이다. 그저 앞으로 걷고 또 걷다가 숙연하게 걸었던 날들. 비로소 나는 사랑을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봄이 무르익는 매화꽃 사이에서.


3월 매화





글 제목, 가수 델리스파이스 ‘챠우챠우 -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인용.

이전 21화 헤아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