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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진 Mar 26. 2024

3월의 어느 날에


나에겐 열정이 없다. 꽃다운 청춘의 애틋한 사랑이라던지 언젠가 이룰 것이라는 막연한 꿈도 없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지금의 삶에 있어 가장 합당한 선택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믿어야 인간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며 뉘우칠 수 있을까. ”타인은 지옥이다“ 장 폴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에 나오는 말처럼 나는 때때로 가볍고 욕망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다. 그것이 다른 이들의 시선 속에 있는 ‘나’가 주체적으로 사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완전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믿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맞긴 하다. 항간에 떠도는 풍문과 이야기는 전부 따분하고도 진부했는데 나는 그것이 웃기면서 공포스러웠다. 믿고 싶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예컨대 타인, 진실과 거짓, 친절한 미소 뒤에 숨겨있는 그림자. 그렇지만 내겐 이렇다 할 확신이 없고 주위의 사람들은 다 알 수가 없다.


그러다 엊그제 달이 흡족히 밝아서 맥주 한 캔을 사들고 집에 갔다. 작년 이맘때쯤에 읽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이 떠올랐다.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책장에서 꺼내 책갈피를 꽂아 놓은 부분을 읽었다. “그들을 두려워하면 할수록 호감을 얻게 되고, 호감을 얻으면 얻을수록 두려워져서 나는 모두를 멀리하게 된다. “


어쩌면 그들도 나의 거짓된 호의에 속고 있을지 모른다. 마치 바람에 휘청거리는 빨랫줄처럼 내가 두려워하는 건 타인의 태연한 관심이다. 규칙을 어기면 실격이다. 사회에 융화되고자 애쓰지 않고 더럽히지 않은 꿈, 인간에 대한 순수한 구애, 패배하고 싶지 않다는 열정. 그런 게 다 언제는 소용이 있었던 적 있었나?


봄이 오니 낮도 길어지고 밤의 어둠도 깊어진다. 내 속에 있는 ‘나’를 헤아릴 수 없어 그저 눈알만 두리번두리번 굴리며 걷고 있는 어느 밤이다.


산에 걸린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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