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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

by 이효진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공공시설 청소부인 히라야마가 노을이 지는 다리에서 자신의 조카에게 했던 말이다. 그의 말처럼 모든 순간은 영속성이 없다. 지금이 지나가면 좀 전에 과거로 돌아갈 수 없듯이 현재를 기점으로 과거와 미래를 세분화하여 살아간다.


누구나 인생에서 꽃 봉오리가 움트는 봄처럼 가장 찬란했던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날은 어디로 가버렸나, 추억하고 곱씹으며 지나간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져 지나간 과거를 필름 삼아 연쇄적으로 비추어 본다.


언젠가 친한 동생에게 일기를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태생적인 자기비판에 일기장으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다음날 일기를 보면 관심받고 싶지만 자신감이 없는 어투로 적어놓은 우울한 머릿속 같았다.


20대에도 여느 또래처럼 젊음의 광기 하나로 마음 가득 사랑을 했더랬다. 깊은 두려움을 몸소 부딪히고 찢겨가면서 배우는 게 사랑이고 그게 인생이라고 믿었던 시절에 나는 여러 번에 걸쳐 막다른 골목으로 쫓기게 되었다.


그제야 세상은 나약한 인간에게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이 인생의 쓴맛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았다. 물러설 힘도 없이 나를 붙잡아 속수무책으로 가슴팍을 힘껏 걷어차며 “거봐라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라며 가소롭게 여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모른다. 어떤 게 정답이고 무엇이 맞는 것인지 세상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 청춘의 끝에 있는 지금의 나에게 인생은 곧 허점투성이고 의문점투성이다. 그래서 일까. 곧 있음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조카에게도 여태 사랑이 무엇이고 삶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다.


다만 나는 살고자 한다. 모래알 같이 쉽게 깨지고 부서질순 있어도 절대 무너지지는 않을 거라고. 그러니 끝끝내 살아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가 삶에 있다고 말이다. 오늘 오후, 창가에 내려앉은 햇살이 어른어른 피어오른다. 긴 겨울이 지나가고 있나 보다.


2월, 그쯤에 봄이 되면 매화꽃 봉오리가 움트기 시작한다고 말해줬던 당신을 기억한다.

코모레비

지금까지 <완벽한 날들>을 구독하시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이번 20화를 끝으로 <완벽한 날들> 연재를 종료합니다. 늦지 않는 시기에 더 좋은 글과 목소리로 찾아오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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