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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영영

by 이효진


추위가 절정을 향하고 있다. 간절히 바란다는 마음은 무엇일까.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가 되고 마음먹기에 따라 1분 1초가 여러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기분이다.


내 건강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더 이상 인간관계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 마음, 일보다 더 넉넉한 여유를 갖고 싶은 마음, 그 여유라는 것은 경제력과 함께 안정된 생활에서 생기는 것 같다는 푸념 소리로 새해의 아침을 보냈다.


해마다 할머니는 동지섣달 밤에 물을 떠놓고 비손 하셨다. 그해 집에 좋지 않은 일이 있거나 집안 식구가 몸이 아프면 장독대가 있는 뒤뜰로 나가셨다. 뒤뜰에는 열매 없이 앙상한 가지만 남은 포도나무가 있었다. 연신 손을 비비는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달처럼 샛노란 광채가 나는 듯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무엇을 위해 할머니는 저렇게까지 정성을 들이시는 걸까?” 삼촌이랑 할아버지도 다 돌아가셨는데 할머니는 아직도 기적이 있다고 생각하며 미신을 믿으시는 걸까?


나는 그 사실이 의아하여 신의 존재 역시 부정했다. 크리스마스에 맞춰 고작 몇 번의 교회와 삼촌의 사십구재를 지내기 위해 절을 간 게 전부였다. 신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다.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세상이 이렇게까지 불평등하고 부조리하게 돌아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어왔다.

그게 아니라면 삼촌의 마지막이, 나의 유년이 저리도 매정할 수 있었을까. 남은 자에게 배려라고는 끝없이 펼쳐진 삶이라는 벌판이다. 뿌옇게 퍼붓는 폭설 현장처럼 그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은 나였을까? 아니면 삼촌이었을까.


떨어지는 눈의 속도는 잠시라고 할 만큼 시간과 비례하지 않고 따듯한 얼굴에서 스르르 녹는 눈송이만큼 나의 기억은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떨어지는 눈을 맞고 있자니 생명의 무게가 긍련히 서글프다.


겨울이 절정을 향한다. 고귀한 목숨들이 잊히지 않길 바라는 겨울의 바람일까. 언젠가부터 눈꺼풀 안쪽으로 눈이 내렸을 뿐이다. 흩뿌리고 쌓이고 얼어붙었을 뿐이다.* 올겨울 첫 한파주의보가 발효됐다. 어떤 슬픔은 날씨에 구속되지 않은 채 영영 마음속에 자리 잡힌다.





저번주 국가 애도 기간으로 브런치 글을 쉬었습니다. 다시 한번 무안 제주 항공 희생자분들과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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