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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운 Feb 18. 2024

어느 날, 남편의 휴대폰을 봤다

프롤로그


신혼일 적에 나랑 남편은 합의를 하나 했다. 서로의 핸드폰을 언제든지 봐도 괜찮다고, 비밀번호도 공유했다. 그래서 봤다.



나는 남편의 친구들을 좋아했다. 남편이 한 동네에서 20년을 살았던 까닭에 그 동네에서 데이트를 할 때면 남편의 절친한 친구들을 가끔 마주칠 수 있었다. 나랑은 인사하는 게 전부인 사이였지만 남편과 친구들이 잠깐 대화 나누는 걸 옆에서 보고 있자면 사람 좋아 보였고 유쾌해 보였다. 인상만 보고 막연히 재밌는 사람들일 것 같다고 짐작해 봤었다. 그러다 문득 이 친구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은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 그게 이유였다. 머리만 대면 잠드는 남편이 재미없던 어느 날, 가벼운 마음으로 남편의 핸드폰을 봤다. 그리고 그날 밤을 꼴딱 새웠다.



4년 정도 지난 일인데도 그때의 충격이 여전하다. 당시 나는 20대 중반이었고 인생 첫 남자였고, 순진했다. 남자들끼리 있으면 ‘더러운’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걸 몰랐다. 아시다시피 더러운 이야기란 어린애들이 웃겨 죽는 똥이나 방귀, 코딱지 같은 얘기가 아니다. 건전한 대화만 하는 십몇 년, 몇십 년 지기 친구 집단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대부분 별다를 거 없을 거란 생각이 드는 건, 그간 지켜봐 온 남편이 아주 평범하고 흔한 보통의 남자 같기 때문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용어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논리 따위는 사뿐히 짓누를 만큼 묵직한 충격이었다.



간혹 어떤 에세이는 읽고 나면 ‘그래서 도대체 제목을 왜 이렇게 지은 거야?’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제목을 보고 가졌던 기대와 책의 내용이 어긋났던 경우인데, 이건 말 그대로 내가 남편 핸드폰을 열어봄으로써 겪게 된 일화다. 여긴 대나무숲이고 내 남편은 당나귀 귀다!



남편 동의를 구하(는 시도도 하)지 않고 쓰는 글이라 최대한 익명으로 남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브런치 작가님들이 그런 말씀을 하실 때가 더러 있다.

도대체 어디서 보고 들어오시는 건지 생각보다 많이들 봐주신다

내 사정을 아는 친구들 몇몇이 결혼에 관심을 갖고 우연히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내 고민을 털어놨던 지인 몇몇이 브런치 보는 게 취미라면? 소문이 커지다 내 신상이 밝혀져버릴지도?... 김칫국을 마시면서 글을 쓰고 있다.



나의 글이 알려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반,

알려지고 싶은 마음이 반이다.



얼마 전에 브런치를 처음 설치해 봤다. 메인을 천천히 내려 보면서 어플에 적응해 가던 중 ‘완독률 높은 브런치북’ 코너를 보고 “와!” 하고 놀랐다. 코너에 소개된 책 4권 중에 3권이 ‘이혼’, ‘이혼’, ‘싱글맘’을 주제로 삼고 있었다.




힘든 결혼생활 하신 분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다들 참고 사는 거구나




내가 유독 못난 사람인지 몰라도 다른 사람의 고충을 들으면 위안이 되기도 한다. 자존감이 낮은 것일 수도 있다. 배 아픈 소식만 넘쳐날까 봐 인스타그램 계정도 안 만들고 싶고, 잘 사는 친구들 카톡 프로필 사진만 봐도 마음이 요동친다. 확실히 화려한 삶을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굴곡진 삶을 들여다보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이롭다. 버거운 시간들을 견뎌내고 솔직하고 정성스럽게 본인의 이야기를 내놓으신 작가님들께 죄송스러운 말씀이라 위축되지만 한편으론, 인간이면 이런 감정을 가질 수도 있지 않겠냐며 공감해 주시는 분도 계시리라 믿고 내 이야기도 솔직하게 정성껏 써보려고 한다.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글을 쓰는 나도, 글을 읽는 분들도.



나의 몰입력이 좋은 건지 작가님들의 필력이 좋은 건지 (후자의 영향이 압도적으로 클 것이다.) 에세이를 읽으면 나는 글쓴이와 같이 분노하고 마음 졸이고 당황하고 억울해하고 슬퍼서 울기도 하고 피식피식 웃기도 한다. ‘맞아 나도 그런 마음이었는데’라는 생각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네’로 은근슬쩍 바뀌는 순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도닥여지는 기분이다.



나의 요동치던 마음을 꽉 붙들어주었던 글들처럼,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발버둥 치고 계시는 분들에게 나도 그 소용돌이 안에 있으니 우리 서로를 한번 붙잡아보자고 손 내밀고 싶다. 내 글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반쪽의 마음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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