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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패맨 Feb 02. 2024

'생활체육'복싱 대회에서 이기려면,

기술보다 기세와 투지

복서처럼 복싱을 하려면

 몇 년 전 일이다. 스파링을 하다가 상대방이 치고 들어오기에 나 역시 맞는 게 억울해서라도 치열하게 맞받아친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더 많이 맞았지만, 그래도 투지 있게 싸웠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그러나 스파링을 끝내고 링에서 내려온 나에게 관장님이 하시는 말씀은 간단했다. "니가 투지가 있는 건 알겠는데, 그런 건 복싱 아니다. 복싱은 스포츠다." 말씀의 본질은, 치고받는 싸움이 아닌 내 아웃복싱 스타일을 살려서 복서처럼 복싱을 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씀이었다. 복싱을 어느 정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복서처럼 짜세있게 복싱을 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당연한 소리지만 정말 많은 반복과 이해와 경험을 통한 체득이 필요한 일이다.

 (0순위로는 체력.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얘기라 제외한다.)

 첫 번째로 복서처럼 보이기 위한 자세. 뒷손 가드가 잘 붙어 있고, 턱이 잘 당겨져 있으며, 스탭과 중심이동이 안정적인, 누가 봐도 '복싱 좀 하네?'라는 생각이 드는 자세. 일단 거울이 아닌 링 위에서 이 자세를 나오게 하는 것만 해도 무진장 많은 반복을 통한 습관과 실전에서 가능한 경험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기술. 상대방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인간의 눈으로 그것을 따라잡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연습한 대로 정확한 자세와 중심이동으로 상대를 타격하기란 레벨차이가 많이 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따라서 내가 생각한 기술을 쓰는 것도 어렵고, 쓴다고 해도 정확한 자세와 밸런스로 타격한다는 것도 어렵다. 기술 사용을 위한 상대방 파악은 물론, 타격거리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한다.

 세 번째로 익숙함. 주먹에 맞는 것과 그 당황스러움에 익숙해져야 한다. 주먹에 맞으면 순간적으로 시야가 가려질 뿐만 아니라, 퉁 하고 머리가 울리기에 잠깐 패닉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그때 당황해 버리면 상대가 그 당황스러움을 귀신처럼 눈치채고 더 주먹을 날린다. 그래서 몇 대 맞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상대를 바라보며 다음 수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기 확신. '내가 주먹을 뻗어 상대를 확실히 맞출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런 확신과 자신감이 나를 더 침착하고 노련하게 만들어 준다. 손자가 생각한 최상의 병법,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과 싸울 수밖에 없다면 미리 이기고 싸우는 것이 이것이다. 내가 확실히 상대에게 정타를 먹일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이 네 가지중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생체시합은 복서보다 싸움꾼을 선호한다  

 물론 생활체육복싱 대회마다 다르겠지만, 생체에 몇 차례 나가본 필자의 경험으로는 대부분의 생활체육복싱대회 심판진들은 복서보다는 싸움꾼을 선호한다. 싸움꾼을 선호한다는 게 무슨 말이냐, 투지 있게 치고 들어가 계속해서 어떻게든 상대를 주먹찜질하려는 모습을 선호한다는 말이다. 진짜 복서를 가르는 시합이 아니라, 이름 그대로 생활체육대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있는 생체에서 막무가내로 치고 들어오는 인파이팅을 대처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기에, 보통 그런 막무가내 파이터들이 더 많이 때리고 그런 기세로 인해 승자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다.

 저번 대회에서 한 가지 아리송했던 시합이 있었는데, 누가 봐도 '와 자세 좋네, 상대공격에 대응 잘하네'라고 느껴지던 청 코너 선수가 막무가내인 홍 코너 선수에게 패배한 것이었다. 필자의 시선으로 볼 때 정타 횟수가 거의 비슷했기에 상대의 공격에 잘 대응하며 아웃복싱을 하던 청 코너 선수가 당연히 이길 줄 알았는데 패배했던 것이다. 이제 보니 막무가내에 자세도 엉망이었지만, 홍 코너가 상대적으로 더 투지 있고 기세 있게 경기를 운영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복서처럼 정확한 자세와 타격각으로 상대에게 정타를 많이 먹이면 그 사람이 승자가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레벨차이가 확실히 많이 나는 선에서의 이야기다. 아무리 복서처럼 하더라도 압도적이지 못하거나, 기세 및 투지가 약해 보이면 심판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확신할 수 없다.

 복서처럼 하지 마라는 말이 아니다. 생체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복서처럼 하되 싸움꾼처럼 투지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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