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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패맨 Dec 30. 2023

이노우에 나오야 4

Undsiputed

반박의 여지가 없는(undisputed)
사진 출처 : Eurosport

 12월 26일, 이노우에 나오야와 말론 타팔레스의 슈퍼 밴텀급 통합 타이틀 매치가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듯이 나오야는 슈퍼 밴텀급 WBA/IBF 챔피언인 말론 타팔레스를 꺾으면서, 밴텀급 통합 챔피언에 이어 이번엔 슈퍼 밴텀급 통합 챔피언에 올라섰다.

 여기서 통합 챔피언 이란, 현존하는 복싱 4대 기구 WBC/WBA/WBO/IBF의 모든 챔피언 벨트를 가진 자에게 주는 칭호로, 영어로는 언디스퓨티드(undsiputed) 챔피언이라고 부른다. Undsiputed Champion. 반박의 여지가 전혀 없는, 모두가 인정하는 챔피언이라는 뜻으로 지구상에서 동체급을 가진 사람 중에서 복싱으로 이 자를 이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말이다. 복싱 기구가 4개인 만큼 도전자들이 여기저기서 속출해 도전하기에, 이 자리에 올라가는 것만큼, 지키는 것 역시 어려운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사진 출처 : X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 하면, 역사상 4대 기구 통합 챔피언을 두 체급 차지한 복서는 테렌스 크로포드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이다. 한 체급에서 통합 챔피언이 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인데, 두 체급 통합 챔피언을 지낸다는 말은 그가 곧 '복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이런 크로포드의 유일무이한 기록을 더 이상 유일하지 않은 기록으로 만들어 버린 복서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이노우에 나오야'인 것이다. 나오야는 두 체급 통합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역사상 2번째 복서가 된 것은 물론, 아시아 역사에 있어서 최초의 인물로 기록되었다.

 테렌스 크로포드와 이노우에 나오야. 두 사람 모두 프로 무대 데뷔 후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으며, KO률이 각각 77% 88%를 넘어간다. 또한 두 사람 모두 P4P(Pound for Pound. 체급을 무시하고 오롯이 실력으로만 따졌을 때 순위를 정하는 방식) 1위를 지낸 전적이 있다. 이런 두 사람이 현재 현역 복서로 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가 메시 호날두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놀라울 따름이다.




경기분석
사진 출처 : Sky Sports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경기는 확실히 이노우에 나오야의 승리였다. 세간은 나오야의 경기력을 칭찬했고 그 위대함을 높이 샀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주관적인 시선에서 볼 때, 이번 경기는 노니토 도나이레를 2차례나 꺾고 올라온 경지의 나오야가 보여줄 수 있던 완벽함은 결코 아니었다. 지난 경기였던 폴 버틀러나 스티븐 풀턴과의 경기에 비해 훨씬 고전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링네임 나이트메어라고 불리는 말론 타팔레스가 훌륭한 복서였다는 사실과 두 번째로, 나오야가 스탭을 거진 안 쓰고 발 붙이고 인파이팅스타일로 치고받았다는 사실이다.   

 이 경기는 노니토 도나이레와의 1차전만큼이나 명경기는 분명 아니었으나, 그의 다른 경기들에 비해 상당히 재밌는 축에 속한 경기였다. 그만큼 말론 타팔레스를 칭찬하고 싶다는 말이다. 나는 이번 경기만큼 나오야가 정타를 많이 얻어맞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노니토 도나이레와의 1차전에서 맞고 머리가 크게 휘청거리며 다운할 뻔한 적이 한두 번 정도 있었으나, 이번 경기만큼 정타를 많이 허용하지는 않았었다. 타팔레스는 가드를 아주 견고하게 하여 나오야의 정타 대부분을 커버했으며, 앞손을 쓱 내밀었다가 갑자기 뻗는 잽이라든가 앞손으로 배를 주다가 뒷손으로 위를 치는 레벨체인지, 앞손 어퍼 훅 연타 등으로 나오야의 얼굴에 꽤나 많은 정타를 꽂아 넣었다. 특히 잽 정타는 맞출 때마다 나오야의 머리가 뒤로 넘어갈 정도로 확실했다.

사진 출처 : Arab News Pakistan

 나오야는 타팔레스를 인파이팅 스타일로 잡으려고 작정을 한 것인지, 장기인 인 앤 아웃 스탭을 거진 쓰지 않고 압박 및 근거리 주먹교환, 토투토(두 복서의 발가락이 닿은 상태로 싸운다는 의미로, 그만큼 붙어서 치고받는 난타전을 뜻하는 말)식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역시나 스탭을 많이 안 쓴 만큼 많은 정타를 허용했지만, 그만큼 나오야의 근접전 연타가 얼마나 무시무시한가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연타도 연타였지만, 콤비네이션에 들어가는 주먹 한 방 한 방이 모두 상대선수를 보내버리기 위한 주먹들이었다는 게 놀라웠다. 연타로 그런 주먹들을 빠르고 정확하게 치는 것도 놀랍지만, 계속해서 그런 주먹을 내는 그 체력이 더욱 놀라웠다.   

 나오야는 타팔레스를 장기인 레프트훅을 시작으로 한 공격으로 4라운드에 한 번 다운시키고, 10라운드에 원투로 TKO 시켰다. 경기가 끝난 뒤, 나오야는 타팔레스가 자신의 주먹을 맞고 힘겨워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아 10라운드에 KO를 시키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만큼 타팔레스가 포커페이스를 잘했고 능숙하게 경기운영을 해냈다는 뜻이다. 경기가 끝나고 눈물을 흘리는 타팔레스가 카메라에 잡혔는데, 객관적으로 봐도 그 나오야를 상대로 정말 잘 싸워낸 경기였기 때문에 아쉬움의 눈물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상대는 역시 나오야였고, 그는 반박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복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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