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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와 정석이 중요한 이유

느린 것 같지만 사실 가장 빠른 길

by 연패맨


기초에 대해서
maxresdefault.jpg 사진 출처 : 나무위키

20대 후반을 살아가면서 확실히 느낀 것이 인생의 불공평함이라면, 30대가 되면서 확실히 느낀 것은 세상 모든 일이 기초와 정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하든 간에 결국에는 한 점에 맞닿아 있다던 혹자의 말처럼, 정말 신기할 정도로 세상만사 모든 일들이 따지고 들어가면 죄다 기초에서 시작하며 결국엔 그것이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도대체 그 기초라는 것이 뭐냐함은.. 흔히들 누군가를 꾸짖거나 비꼴 때 쓰는 "기본이 안 돼있네. 기본이"의 그 기본이 기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초는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일의 성질에 대한 것, 둘째는 일의 태도에 대한 것.

일의 성질에 대한 기초는 분야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복싱의 경우는 스탭, 체력, 원투가 기초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거 못해도 이 3가지만 어느 정도 수준으로 올라와있으면 생활체육 수준에서는 상위 랭커가 될 수 있다. 왜냐면 그만큼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새벽같이 일어나 달리고, 발바닥 껍질 벗겨질 정도로 스탭 뛰고, 원투를 1년을 넘게 연마하는 게 디폴값인 이유가 있다. 축구에서는 트래핑과 드리블이, 기타를 칠 때는 코드를 잡는 것이, 건축을 한다면 터파기와 골조공사가, 어떤 일을 배운다면 허드레 일부터 하는 것이 기초일 것이다. 재미없다고, 이걸 대체 왜 해야 하냐고, 이게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으로 기초를 허투루 한다면 후에 무너져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야 할 가능성이 높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그 후로는 다 엇나가는 법이다. 가장 느린 길처럼 보이지만, 기초부터 차근히 다져 올라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인 이유다.

2022011301000401200016091.jpg 소크라테스 / 사진 출처 : 영남일

복싱은 원투, 축구는 트래핑처럼 각 분야마다 일의 성질에 대한 기초야 천차만별이겠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의 기초는 모든 분야가 동일하다. 내가 맡은 바 또는 내가 배운 바 그것을 확실히 하는 것, 나아가서는 그것을 더욱 효율적이게, 더 나아가서는 그것의 귀신이 되는 것이다(*세이노의 가르침 참고).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열심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잘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람의 재능(타고남)에 따라 잘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왕 몸 담는 일이라면 눈에 띄게 잘은 못 해도 자신이 어느 정도 잘하는 축에 끼는 일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더 잘하기 위한 노력은 물론 효율적으로 잘하기 위한 공부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잘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맡은 일의 귀신이 되기 위해서는, 배운 것을 다방면에 있어 실리적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초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복적인 업무에 익숙해진 것은 물론, 스스로 알만큼 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안다'라고 말했던 소크라테스를 생각해 보자). 또한 기초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도, 하루하루 힘든 일과를 마치고 나면 기초를 재점검하기보다 지친 몸을 휴식하는 것이 우선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부터가 그렇다. 복싱을 한다면서 가장 기초 중에 기초인 체력은 바닥이고 원투조차 깔끔히 친 적이 없다. 일을 할 때도 (엄밀히 따져보면) 내가 맡은 바 또는 배운 바조차 확실히 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최근에서야 다시 원투를 시작하고, 맡은 일에 조금 더 신경 쓰고 있는 수준이다. 단언컨대 기초는 가장 중요한 만큼, 가장 어렵다.







정석에 대해서
Inoue3-0830-1-e1725000926504.jpg 이노우야 나오야 / 사진 출처 : JAPAN Forward

기초에서 정석으로의 이어짐은 매우 자연스럽다. 이노우에 나오야, 로마첸코, 비볼, 우식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수많은 프로복서들이 아마추어 복싱으로 기반을 다졌던 이유가 여기 있다. 아마추어 복싱만큼 기초이자 정석인 스탭과 원투를 많이 쓰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아마추어 복싱은 3분 3라운드 경기이기 때문에, 많은 점수를 내기 위해 쉴 새 없이 스탭을 뛰고 상대적으로 빠른 스트레이트 공격을 많이 낸다). 내가 항상 언급하는 나오야가 그렇다. 가드 잘 붙이고, 어느 하나 불필요한 동작 없고, 스탭 꾸준히 뛰고, 원투베이스로 공격을 들어간다. 말 그대로 교과서(정석) 복싱을 구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복싱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정석적인 복싱을 추구하는 것은 (체력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정말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많은 선수들이 정석보다는 개인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고 그에 맞게 훈련하며 자신을 키워나간다(나오야는 정석 스타일이 스스로에게 꼭 들어맞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 중요한 점은 그럼에도 모든 선수들이 정석을 가장 먼저 배운다는 점이다. 정석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다음 단계가 가능하고, 더 나아가서는 화려한 스킬 및 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인생의 모든 부분에 적용된다. 타고나지 않고서야 쉽고 빠르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 대부분은 밑바닥 기초부터 탄탄히 하며 정석적으로 느리게 성장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석을 건너뛰어 더 빨리 더 많이 더 멋지게 배우려고 한다. 물론 그렇게 하다 보면 실력이야 늘겠지만, 처음부터 정석적으로 실력을 닦아온 사람과는 어느 시점에서 반드시 미세한 차이가 나기 마련이며, 무엇보다 질이 확실히 다르다(스파링만 맨날 하면 실전 실력이야 늘겠지만, 진짜 밑바닥부터 닦아온 실력자들과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실 따지고 보면 정석으로 성장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다.

o_1hp1k6rlb10cp1o1dc1vdpi1452c.jpg 데이비드 간디 / 사진 출처 : Eternobody Fitness

많은 유튜버들이 이성에게 매력적인 남자가 되고 싶다면,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여유로워야 한다'는 식의 뻔한 조언들을 해왔다. 그러나 이는 쉽게 내뱉은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진짜 조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방법이나 과정은 다 생략하고 '부자 되려면 모은 돈을 잘 굴리면 돼'와 같이 말하는 꼴이다. 사실 매력적인 남자가 되는 방법은 조언 따위 없어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자기 일 잘하고, 돈 열심히 벌고, 옷 잘 챙겨 입고, 좋은 발성 및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고, 외모를 꾸미고(필요하다면 화장/성형), 사회성을 기르고, 운동을 해서 몸을 키우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어느 수준으로 올라오면 자신감이나 여유는 자연스레 생기게 되고, 결국엔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어렵다. 하나만 어느 수준으로 올리는 것도 힘든데 저 여러 가지를 골고루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고 매력적인 남자가 되는 기초이자 정석이다. 뭇 남성들(나 포함)이 이런 당연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인터넷에 굳이 조언을 구하는 이유는, 정석을 건너뛰어 조금이라도 쉽고 빠르게 원하는 것을 얻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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