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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잘레스 파파 Jul 31. 2021

WHO AM I ???

2021년 4월 30일 (금) / 18일 차

 2021430, 금요일 (18일 차)   WHO AM I ?


 강정 아파트 제주시(등산스틱 구매) 다가미 김밥 (★★★) 별빛누리공원 아침미소 농장 (★★★★) 예래해안로 생태마을 (비 내리는 밤 드라이브)      



 벌써 4월의 마지막 밤이다.

 제주 한 달 살이의 1막이 끝나가는 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해안도로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일기를 쓴다.


 오늘은 뭔가 많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괜스레 서운하고 속상해져 가는 마음이 큰 게.

 모든 게 아이들을 위해 짜여진 것 같은 하루.

 그 안에서 나는 잊고 있는 것 아닌지에 대한 서운함.

 오늘 그런 마음이 문득 들었다.

 아내도 지칠 텐데 남편이 이런 모습이면 얼마나 지칠까.  

 걱정도 된다.      


 육아휴직이 두 달이 지났다.

 지나온 만큼의 반도 안 남았다.

 제주살이는 열 여덟째 날 동안

 아침에 일어나 잠드는 순간까지

 우리는 아이들 곁을 잠시라도 떠나 있을 수 없었다.

 기억나는 일탈은 애들 재우고 아내랑 시간을 나눠

 마사지받으러 갔던 그날 밤?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 한 시간 남짓

 비자림로 일대를 드라이브한 그날 아침?

 ! 빨래방을 찾아 나섰던 섭지코지 인근의

 성산 빨래방이 전부 아닐까.  


 18일간 아이들을 위한 날들이 전부였다.


 육아휴직을 시작하며 나름 계획했던 바가 있다.

 앞으로 내 삶의 방향은 어떻게 가야 될지 생각해보고,

 책도 읽고, 명상도 하고, 견문도 쌓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제주에 와서 깊게 곱씹으며 읽고 싶었던

 네 권의 책은 펼쳐보지도 못했다.

 물론 밤늦게 아이들이 자면 짬을 내 읽어볼 수 있겠지만,

 하루 종일 나갔다 오면 심신이 지쳐

 도무지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비 오는 바닷가가 참 좋다.

 창문을 열면 비가 들어오지만

 일부러 열어 비를 맞고 파도소리를 듣는다.

 밤마다 해안도로를 달리는 것도

 어두운 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깜깜한 밤이다.




 마흔을 앞둔 서른 아홉수.

 열정이 넘쳤던 내 인생이 조금은 무뎌졌다.

 반면 마흔 초전이라 그런지 조급한 마음도 있다.

 

 방송쟁이로 10년을 살았다.  

 타인의 삶을 재단하는 프로그램도 많이 만들었다.

 조금 더 시청률 어그로를 끌어 보려고

 타인의 깊고 무거운 삶을 조각조각 냈다.

 이랬던 사실들을 잊고 지내다 페북에

 모 지인이 쓴 방송국 섭외에 관한 글을 보며

 나도 그런 삶들을 살아왔다는 걸 깨닫게 됐다.

 다시 돌아가도 그렇겠지.      

 

 제주에 오면 뭔가 달라질 게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좀 더 가져봤으면 어땠을까.

 며칠 전,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한라산에 한 번 올라가 보고 싶다고 얘기했다.

 제주에 와서 한 번도 한라산 인근도 가보지 못해

 무리해서라도 정상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아내는 흔쾌히 허락했다.

 너무 기뻐서 바로 탐방 신청을 했다.

 쉽다는 성판악 코스 대신 어렵지만 올라가는 전망이

 멋지다는 관음사 코스를 골랐다.

 물론 지금까지 봤던 제주의 많은 숲들이 모두 좋았다.

 그래도 백록담에 오른다면,

 정상에 오른다면 또 어떨지 생각만 해도 설렜다.


♥ 아침미소 농장의 추억 ♥


 아이들의 하루는 나쁘지 않았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공원에서 뛰어놀고, 

 소 우유도 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아이들의 하루와 달리 오늘 내 하루는 약간은 울적했다.

 아내와의 사소한 갈등이 있었는데

 주저리주저리 담기에는 내 속이 좁았던 것 같아

 그만두련다.


 그냥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은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밤늦은 시간, 무작정 나와서 일기를 쓴다.

 한 번쯤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필요해서.

 아내와의 갈등은 모든 게 말에서 비롯되는데

 그 말이라는 게 참 쉽다.      

 여기서부터는 진지한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다.      


 나라는 존재. 나는 누구일까?

 마흔 살이 되도록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으며,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까?

 내게 늘 고민 같은 숙제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때문에 그 좋아하는 많은 것들도 포기하고 산다.

 그래도 나보다 더 행복해하니 대단하다.

 아이들 둘을 키우면서

 아내에게 육아 우울증 같은 건 없었다.


 나만 괜히 유난인 건 아닐까.      

 일기를 쓰는 지금, 저 먼바다에 번개가 내려친다.

 까만 밤바다에 내려치는 번개를 보면 모든 게 무상하다.

 낮에는 그렇게 멋진 에메랄드빛 시원한 바다였는데,

 밤이 되니 집어삼킬 듯한

 파도와 깜깜한 물결에 두려움도 .


 모든 건 자연의 섭리다.     

 나는 돈도 백도 없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들 다 하며,

 펑펑 돈을 써본 적도 않는다.

 사치를 하고 싶은 생각도, 남들 다 하는 골프를

 치고 싶은 생각도 물론 없다.

 작은 욕심은 단순히 내 삶을 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서 그럴 시간이 없지만.

 아이들이 조금 더 크고 돌봄의 시간이 줄어들면 가능하겠지.

 그렇게 몇 년만 조금 힘들어도 참자는 심정으로

 버티자고 아내와 얘기했다.       


 나의 남은 날들은 어떨지,

 지금에 와서 더 고민이 필요할까.

 어차피 인생은 예측하는 대로 흘러가기는 어려운 것처럼

 다시 복직해도 똑같이 또 어떤 프로그램에 가서

 주말 없이 촬영 다니고, 밤새 편집하고, 또 방송 내고

 그런 삶을 되풀이하면서 매월 주는 월급에 만족하며 살겠지.

 

 대단할 것도, 부족할 것도 없는 삶일 테지. 

 코로나 시국에 다들 힘들 텐데. 

 끊기지 않고 나오는 월급이 있다는 사실에도

 그런 작은 사실에도 감사해야 하는데,

 오늘따라 감정 기복이 심한 나는

 유독 배가 너무 부른 건 아닐까 싶다.      


가족이 주는 행복을 가끔은 당연한 듯 잊고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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