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탕. 탕. 탕.
물리학자는 아내의 할아버지를 쏴 죽이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하지만 여전히 아내는 소파에서 친구와 키스를 하고 있다.
-바람피우는 것은 모계의 혈통인 모양이군.
물리학자는 다시 과거로 가서 아내의 할머니도 쏴 죽인다. 그러나 여전히 현재는 그대로다. 물리학자는 시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동료에게 조언을 구한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미래가 변해. 사소한 일로는 안 돼.
동료가 말한다. 물리학자는 다시 44구경 매그넘을 챙겨서 과거로 간다.
똑똑똑,
-실례지만, 워싱턴 씨 되십니까?
탕. 탕. 탕.
아내는 여전히 키스를 하고 있다.
똑똑똑,
-실례지만, 콜럼버스 씨 되십니까?
탕. 탕. 탕.
아내는 여전히 키스를 하고 있다.
물리학자는 계속해서 과거로 돌아가 케네디, 존 레넌, 링컨, 아인슈타인, 오드리 헵번, 루이 암스트롱을 쏴 죽인다. 퀴리 부인에게 핵무기 제조법을 알려주고 오기도 한다. 종국에는 주라기 시대로 돌아가 기관총으로 공룡을 몰살시킨다. 하지만 아내는 여전히 키스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에서 물리학자가 어떻게 15분 만에 타임머신을 만들었는지, 어떤 원리로 시간 여행을 하는지, 총으로 누굴 쏴 죽이는지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단지, 그 정도로 아내의 외도에 화가 났다는 의미만 있을 뿐이다.
둘째, 의미가 확실하지 않을 때는 필연적인 이유를 만들어 준다.
타임루프를 필연적으로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게임이다. 게임의 캐릭터는 주어진 미션을 성공할 때까지, 계속해서 같은 시간을 반복한다. 미션에 실패하면 다시 처음부터 리셋. 숙련도는 증가한다.
기우치 카즈마사의 『엠블럼 Take2』, 탐 크루즈 주연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같은 작품이 그런 설정이다.
게임이라면 온갖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도 납득하고 넘어 갈 수 있다. 실제로 『엠블럼 Take2』에는 야쿠자들이 M60기관총으로 무장을 한다거나, 폭동을 일으켜 형무소를 점거한다거나 하는 식의 과한 장면이 많다. 마지막에 가서는 프랑스 용병들이 쳐들어와서 도쿄타워를 폭파하고, 사람들을 학살하고, 자위대까지 제압한다. 그 말도 안 되는 장면들을 중학생 두 명이 『엠블럼, 올라서라 조폭의 정점』이라는 롤플레잉 게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게임이라면 모든 것이 말이 되니까.
비슷한 방식으로 병을 이용하는 것도 있다. 신비한 향을 피워 20년 전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죽음을 막으려는 주인공은 뇌종양 말기 환자다. 그가 겪는 모든 일은 뇌종양으로 인한 착각일수도 있다.
꿈은 허무하긴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편한 방식이다. 모든 게 꿈이라는데 어쩌겠는가. 다만, 부끄러움은 읽는 사람 몫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