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일하는 중간에도 아줌마 집에 갔다.
"아지매. 이거 묵자! 응?
아지매, 생각 나나? 내 고등학교 때 말이다.
우리 무용 선생이 맨날 내만 보면, '어이! 빨간 치마!'하고 불렀다 아이가. 내가 교복 살 돈이 없어서 누가 전봇대 밑에 버려놓은 거, 그거 주워가 깨끗이 빨아 입고 댕겼는데 그게 너무 낡아 물이 다 빠져 빨개지뿟다 아이가. 그거를 친구들 다 보는 앞에서 꼭 내를 '빨간 치마'라고 불렀던 거 기억 나제? 그 때...... 엉엉...... 언니야...... 언니 니가 그때 시장에서 그 무용 선생이랑 마주쳤던 날, 한 번만 더 우리 숙희한테 빨간 치마라고 불렀다가는 내 손에 죽을 줄 알라고 언니 니가......
언니 니 아니었으면 내 벌씨로 죽었다! 우리 아부지가 만날 천날 술 쳐묵고, 나는 아홉 살 때부터 밥하고 빨래하고...... 밤 열 시가 넘어서 새벽까지 공부하고...... 언니 니가 내 이대 합격했을 때 내보다 더 좋아하면서 등록금에 보태라고 학비도 내줬다 아이가. 내가 우리 오빠 학비 땜에 결국은 중퇴하던 날, 언니 니 아니었으면 내가 고마 확 벌써 죽었다.
언니야. 내랑 살자. 응? 이제 우리랑 살자! 뭐, 언제는 같이 안 살았나? 이거 얼른 묵자...... 언니야...... 우리 살자...... 우리 다시 살자......"
엄마는 아줌마를 끌어안고 서글프게 울었다.
밝고 호탕했던 현자 언니는 호호 아줌마처럼 늘상 웃는 눈에 볼이 반지르했다. 언니의 얼굴은 바싹 마른 면이불처럼 윤기가 없었고 반달눈도 사라져 퉁퉁 부어 붉고 가느다란 눈만 있었다. 언제나 열려 있던 훈이 오빠의 방문은 매일 잠겨 있었고 그 후로는 미국 과자도 먹지 못했다.
ㅣ 내 이 집에서 몬 살겠다
아줌마는 우리 집 에어컨이며 냉장고를 최고급으로 바꿔주었다. 6학년이 된 내가 수학여행을 간다니까 옷 사 입으라며 30만 원이나 줬다. 아줌마는 아저씨가 똑똑하게 보험을 잘 들어놨다며 이 돈 갖고 얼마나 살겠냐며 아저씨 따라 빨리 콱 죽어버릴 거라며 돈을 물쓰듯 썼다. 엄마는 아줌마가 주는 돈도 따로 챙겨뒀고, 아줌마가 바꿔주는 살림들도 환불을 받아 같이 모아두었다.
아줌마는 아저씨와 함께 지은 고풍스럽고 멋있는 이 한옥집에 더 이상 못 있겠다고 했다. 30년 가까이 아저씨와 함께 살았던 집터였다. 아줌마는 집을 팔고 옆 도시 아파트를 샀다. 연고가 전혀 없던 신도시였다. 아줌마 집 세간 살림이 이사를 나가던 날, 엄마는 며칠 전부터 매일 흐느꼈다. 엄마는 살점이 뜯겨 나가고 뼈가 바스러지는 것 같이 아프다고 했다. 아줌마는 끝끝내 떠났다. 엄마는 아줌마가 뿌린 돈뭉치를 현자 언니에게 몰래 돌려주었다.
아줌마 집이 텅 비었다. 나는 아줌마 집 시멘트 창고의 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갔다. 꽉 차 있던 장독대도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습관처럼 난간에 앉았다가 뒤로 자빠질 뻔했다. 그땐 장독대가 등받이 역할을 하고 있었다. 넘어지려던 순간부터 심장이 재빨리 뛰기 시작했다. 갑자기 재빠른 누렁이가 보고 싶어졌다. 해는 여전히 지고 있었고 노을은 여전히 내 방 창문을 뚫고 들어가 내 침대 이불을 물들이고 있었다.
아줌마가 양쪽 집을 오가기 편하게 우리 집 담장을 뚫어 새로 만들었던 철 대문도 여전히 빛을 내며 마른 햇살을 튕겨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대문 색깔도 아줌마가 고른 색이었다. "나는 파란색이 그렇게 좋드라. 옛날에 내 젊었을 적에 그 수출무역단지 옆에 공장에서 일할 때 말이다. 바로 지척이 바다인데 을매나 가고 싶든지. 숙희야! 요요 대문은 내 꺼다 아이가? 요 대문을 내만 드나들지 누가 드나들겠노? 내 맘대로 한다이!"
아줌마가 골랐던 촌스러운 파란색 우리 집 대문, 아니 아줌마 전용 대문, 아니 사실은 내 전용 대문을 보니 가슴이 구멍이 난 것처럼 시렸다. 누가 내 마음을 삽으로 퍼내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 혼날 때마다 아줌마 생각이 났다.
"야야! 니는 맨날 지은이만 그래 잡노, 잡기를! 고마해라!" 아줌마 목소리가 귀 안에 들어있어서 버튼만 누르면 쏟아졌다. 우는 내 눈물을 닦아주며 뽀얗게 화장을 해줬던 현자 언니도 보고 싶었다. 사무실에서 퇴근할 때 리어카 아저씨에게 수박 삔, 리본 삔을 사서 내 머리를 땋아줬던 현자 언니, 신발도 안 벗고 기어서 냉장고 문을 여는 내 코 앞으로 센스도 없이 흔들지도 않은 식혜를 따라 주던 훈이 오빠도 그리웠다. 이제는 용돈을 척척 주는 사람도, 미국 과자를 매일 주던 사람도, 예쁜 머리띠를 사주던 사람도 없었다.
누렁아. 나만 끝까지 흰둥이라고 불러서 미안해. 흰둥이라고 불러도 저를 부르는 줄 어찌 알고 쫄래쫄래 와줘서 고마웠어. 아니다. 너는 뭐라고 불러도 다 달려와서 내가 바부, 멍충이라고도 불렀었구나. 너 다음 생은 사람으로 태어난다 그랬지? 아저씨가 그랬잖아. 그럼 너, 기왕이면 우리 강병진 아저씨로 태어나 주라. 그래서 다시 우리 양복순 아줌마 남편이 되어 주라. 잘 가 누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