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a Kim Oct 24. 2021

37세 늦깍이 수험생

매일 포기를 꿈꾸다.

둘째 아기는 예정일을 무려 14일이나 지나서 태어났다. 아기는 12월의 대학원 마지막 종강시험이 끝난 날 세상에 태어났다. 예정일에 가깝게 태어났다면 기말고사를 못 봤을 테고 그 학기 성적은 재수강을 했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 시험이 끝나자마자 태어나 준 아기가 너무 고마웠다. 덕분에 6개월, 한 학기가 단축됐다. 이렇게 또 내 손을 타야 하는 (내 발목을 잡을) 두 번째 아기가 태어났다.



방학 3주 간 산모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몸을 추스렀다. 겨울방학 때 몸을 얼른 회복해야 3월 새학기를 등록할 수 있었다. 나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들은 욕심쟁이 엄마를 만나 엄마의 시간에 맞춰 커갔다.



"엄마! 꼭 텃탱님이 되세요! 엄마 꿈을 이루세요!"



꿈이 뭔지도 모를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이런 말로 용기를 줬다. 혼자 어린 아들과 신생아 딸을 키우는 일 하나만으로도 무척 힘들었다. 엄마 역할도 소홀히 할 수 없어서 어린이집 소풍날이나 행사 때는 새벽부터 하루 종일 분주했다. 대학원 3년 차였던 마지막 학기까지 이 모든 과정이 내내 버거웠다. 



매일 눈뜰 때마다 포기하고 싶었다. 반나절만 내 몸 혼자 자고 싶었다. 남편은 해외 근무 중이었고 아기들은 내 몸에서 한 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육아의 의무가 없는 사람들이 가장 부러웠다. 잠의 질은 현저히 떨어졌고 집으로 돌아오면 집안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몸이 바스라지는 것 같이 힘든 절망의 시기였다.



마지막 몇 달은 시부모님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시부모님 댁 윗 층으로 이사를 했고 딱 석 달만 아기들 저녁 먹이는 것까지 도와달라고 염치없이 부탁드렸다. 그리고 숙대 중앙도서관에서 1분 거리에 하숙방을 얻었다. 대학원 입학 문턱에서부터 난관이었던 지난 3년을 어떻게 지나 왔는데 여기서 물러설 수가 없었다.



하숙방에 간단한 짐과 책꾸러미들을 옮겨놓고 학교 도서관 정원에 앉았다. 내 아이들이 푸른 잔디 위를 토끼처럼 뛰어다녔다. 대학생들이 지나가며 아이들에게 웃으며 손인사를 하는 이 모든 순간이 꿈 같았다. 하숙집 1일 차 침대에 누워 들었던 첫 생각은

' 포기하고 집에 가고 싶다. 아기들 보고 싶다.'



노는 것도 잠시, 엄마와 헤어져야 하는 아이들은 발버둥을 치며 울었다. 억지로 뒷자석 카시트에 꽁꽁 묶인 아이들은 온 몸을 틀어 뒷창문을 두 손으로 치며 울었다. 소리없는 울음이 꼭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아이들을 잠시 만나는 이런 일요일마다 내 얼굴과 마음은 온종일 젖어있었다. 내가 뭐 하는 짓인지, 24시 지하 도서관 칸막이 자리에 엎드려 책이 젖도록 소리없이 울었다.





그랬던 그 시간들은

몇 달만 집중하면 될 거라는 용감한 내 결의와 함께 합격의 문턱에 걸려 무산되고 말았다.



1점도 안되는 소수점 차이였다.




이전 05화 36살, 교생실습부터 임용시험을 위한 도장깨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