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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Mar 02. 2024

헨리 슈거 & 셜록 홈즈

The Wonderful Story of Henry Sugar, 2023

_ image from Google



The Wonderful Story of Henry Sugar _ '찰리와 초컬릿 공장'의 원작자로도 알려진 '로알드 달Roald Dahl'이 1976년 2월부터 12월까지 쓴 소설을 '웨스 앤더슨' 감독이 2023년에 영화로 만든 것이다. 러닝타임은 40분 남짓으로 다소 짧지만 허술하게 낭비한 씬이 전혀 없어서 꽉 찬 영화다. 핵심적인 내용은 보여주지도 않고 내레이션처럼 들려주는 이상한(?) 영화로 신속하고 기발하게 무대 장치를 바꾸는 세련된 연극을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평생 일 해 본 적이 없는 대물림 부자인 헨리는 재산을 나누기 싫어서 결혼도 안 했지만 외모를 가꾸고 멋진 맞춤옷과 구두를 착용하고 페라리를 타고 다닌다. 헨리 같은 부자들이 그렇듯이 가진 돈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돈을 욕망하면서도 한 편으론 어느 날 빈털터리가 될까 봐 불안하다. 그래서 주식, 미술품, 토지, 다이아몬드, 경마, 등등 온갖 도박을 다 하며 때론 속임수까지 쓰면서 재산을 증식하려고 한다.


어느 여름 주말에 헨리는 런던의 윌리엄 경의 초대를 받아서 그의 저택으로 간다. 다른 손님들은 모두 게임을 하며 즐기는데 어쩐 일인지 헨리는 창가에 혼자 앉아서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그러다 서재에 들어가게 되는데 책 수집가였던 윌리엄 경의 부친 덕분에 벽마다 가죽 장정본의 귀한 책들로 꽉 차 있다. 하지만 평소에 탐정소설이나 스릴러만 읽었던 헨리에겐 다 소용없는 책이었다. 그런데 그 장서들 가운데서 푸른 겉장의 아이들 연습장 같은 얇은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제목도 없다. 표지를 넘기자 첫 장에 이렇게 쓰여있다.


눈 없이도 볼 수 있었던 남자, '임다드 칸'에 대한 보고서


책에는 '임다드 칸'이라는 사람의 일생과 함께 그가 어떻게 이 대단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수련과정이 적혀있었다. 어느 요기로부터 물려받은 방법으로, 정신을 오직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훈련을 통해 얻은 능력이다. 그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 열 살 때 죽은 형의  모습을 떠올리며 오직 형만 생각하며 명상을 한다. 8년 동안 날마다 수련을 한 덕분에 마침내 책 한 권을 펼치지 않고도 다 읽을 수 있게 되었고 그는 평생 서커스단에서 일했다. 이 책은 임다드 칸을 만났던 닥터 z.z. 차터지가 그를 통해서 사물의 형태를 눈을 통하지 않고 다른 신체부위를 이용해서 뇌까지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밝히고 싶어 5시간 동안 기록한 보고서인데 그날 밤으로 그가 죽어서 더 이상 그 비밀을 밝혀낼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은 헨리는 카지노에서 쉽게 돈을 따기 위해서 이 방법으로 수련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에겐 형이 없으므로 자기 자신을 떠올린다. 사실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부분이 그가 외롭고 나르시즘에 빠진 이기적인 사람이란 걸 암시하고, 이런 설정은 나중에 그가 하는 일에 더 큰 의미를 주는 장치가 되었다.


헨리는 수련을 시작하고 3년 3개월 지났을 때, 단 5초 만에 카드의 숨겨진 부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딜러의 패가 다 보이는 헨리는 금세 큰돈을 따서 집으로 돌아오지만 예전처럼 신나지 않고 오히려 기분이 가라앉는다. 배팅만 하면 돈을 딸 수 있으니 기대나 호기심이 사라져서 그럴까? 혹은 수련을 하는 과정에서 아예 인간성이나 가치관마저 달라진 것일까? 헨리는 살짝 혼란스럽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헨리는 탁자 위에 놓여있는 어제 딴 돈뭉치를 본다. 하지만 그것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급기야 발코니로 나가 허공에 지폐 한 장을 날린다. 아래에서 누군가 이게 뭐냐고 하자 그냥 가지라고 한다. 이렇게 계속 한 두장씩 날리며 사람들이 돈을 줍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다가 아예 늦은 봄날, 봄바람 휘날릴 때 벚꽃잎 날리듯 지폐를 날린다.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곧 벨이 울리고 경감이 올라왔는데 마구 뿌린 돈 때문에 거리에는 거의 폭동이 일어났다면서 그렇게 큰돈이 생겼는데 필요하지 않으면 고아원에 보내든 병원을 짓든 좋은 일을 할 것이지 길바닥에 뿌리는 바보가 어디 있냐면서 호통을 친다. 헨리는 갑자기 마치 몰랐던 진리를 깨달은 듯 멍해진다. 정말 대물림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은 이 단순 명백한 원리를 잊고 사는 걸까?


어쨌든 이제 헨리에게 도박은 유희가 아니다. 하지만 돈은 원하는 만큼 딸 수 있다. 원래 부자긴 하지만 마침내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쓸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개과천선한 헨리는 믿을만한 자기 집안의 회계사 존과 함께 위대한 계획을 세운다. 존은 잉글랜드에서 했다간 세금으로 다 털릴 거라며 스위스로 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존은 스위스에서 자선단체 회사를 차리고 헨리는 자신을 변장시켜 줄 분장사 맥스와 함께 전 세계의 카지노를 돌아다니며 벌어들이는 어마어마한 돈을 스위스로 송금한다. 존은 이 돈을 받아서 전 세계에 21개의 병원과 고아원을 만들고 지속적인 후원을 한다. 헨리는 20여 년 동안 이 일을 하다가, 자신의 몸도 투시가 가능해서 작은 혈전이 이동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무시하고 살다가 폐색전으로 죽는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인생이었다 생각한다, 그를 잃고 상심하던 존과 맥스는 그의 훌륭함을 조금이라도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작가에게 그의 이야기를 해서 나온 책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끝내 '헨리 슈가'라는 익명으로 남는다.


사실 이렇게 요약한 내용만 보면 로빈훗이나 홍길동전의 아류 같아 그저 그런 영화라 짐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감독이 웨스 앤더슨이면 상황이 달라진다. 늘 그렇듯 그의 영화는 개인의 취향껏 챙길 수 있는 재미와 위트가 그 어떤 영화보다도 다양하다. 도드라지면서도 흡수되는 색감,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알아채게 되는 신박한 즐거움이 구석구석 숨어있다. 이 영화에서도 보일락 말락 커튼 여는 손, 공중부양 의자, '로열 테넌바움'에서 나오는 택시인 '집시 캡'이 연상되는 '집시 하우스'(실제로 '로알드 달'의 작업실 이름이라고 한다.) 게다가 천연덕스런 1인 2역들, 마치 책을 읽는 듯한 대사처리, 연극무대처럼 씬의 배경이 바뀌는 장치 등등... 그리고 이런 소소한 즐거움 덕분에 지루하고 식상하지 않게 교과서적인 명제를 떠올려서 누군가를 변화시키기도 할 것이다.


앤더슨 감독은 워낙 독특한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감독이라서 영화의 몇 장면만 봐도 알아챌 수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출연한 배우들로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몇몇 유명한 감독이나 작가를 중심으로 소위 라인이나 사단이라고 불리는 배우들이 있는데 그에게도 마치 도원결의를 한 운명공동체 같은 배우들이 있다.  하지만 그의 영화의 장점 중 하나는 주연이 주연 같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역할들이 독특하고 어찌나 스토리 라인의 적재적소에 달라붙어 있는지 어떤 단역이든 질적으로는 절대 비중이 떨어지지 않는다. 감독으로서의 그의 훌륭한 역량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각각의 개성으로 씨줄 날줄을 촘촘하게 엮어서 짠 독특한 태피스트리 같다. 벽에 걸어두면 그저 아름다울 뿐, 누가 얼마나 더 잘했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고백하자면,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를 보자마자 바로 끌렸던 이유는 한 남자 때문이다. 앤더슨 감독의 영화인 걸 알았는데 포스터의 남자는 소위 앤더슨의 페르소나라고도 불리는 오웬 윌슨이나 빌 머리가 아니었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랄프 파인즈도 아니었다. 그의 영화에서는 한 번도 못 본 사람이다.


윌리엄경의 서재에서 평소에 탐정소설과 스릴러만 읽어서 여기엔 읽을 책이 없다는 위트와 유머를 장착한 대사로 벌써 나를 즐겁게 했던 헨리 슈거는,(이쯤에서 영화 안 보신 분들도 예상하셨죠? ㅎ) '베네딕트 컴버배치다'. 우리의 아니, 나의 셜록 홈즈! 땡잡은 기분이었다. 사실,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은 연기력과 개성은 누구와도 비교할 바가 없지만 개인적인 선호도는 그리 높지 않은 배우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의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 새 주인공이 안 어울리면 어쩌나 했는데 이건 뭐,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게 생겼다.


제목으로도 썼듯이 헨리 슈거와 셜록 홈스를 연결시킨 것은 단지 배우가 '베네딕트 컴버배치'기 때문만은 아니다. 뜨개질을 할 때면 여전히 오디오북을 듣는데 지난 두 달 동안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과 포와르경감과 잠깐 놀고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에 푹 빠져있기 때문이다. 셜록 홈즈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는데 장편 단편 합해서 거의 50여 개의 오디오 북을 듣다 보니 어릴 때 읽었던 스토리가 나오면 반갑기도 하고 나도 베이커 스트릿에 사는 그의 이웃처럼 느껴질 정도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듣다 보면 꽤 여러 편에서 홈즈의 범죄에 대한 개인적인 가치관을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론 죄인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기준을 가진 탐정이라 자신은 수사하는 과정만 즐길뿐 사건 해결의 공로나 범인의 처리는 경찰에게 넘기지만 개인적으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측은지심이 생기게 하거나 피해자가 천하에 죽일 놈이라 너무 심한 고통을 받았던 가해자의 경우엔 범죄를 저질렀지만 굳이 벌의 심판을 받게 하지 않는 융통성을 발휘한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세상엔 형벌이 필요 없는 범죄자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다소 위험할 수 있지만 어쩌면 현실에선 쉬운 문제가 아니라서 책 속에서 만나는 그(작가)의 윤리의식에 더욱 마음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원인이나 과정이 결과를 정당화시킬 수 있을까? 광범위하게 적용시키기엔 다소 복잡한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럴수도 있다는 쪽으로 기운다.


헨리 슈거도 아무리 자신의 능력이긴 했지만, 공정하지 못하다는 입장에서 보면 그것도 일종의 범죄행위다. (그래서 자주 변장을 하고 같은 곳은 몇 개월동안 가지 않고.. 등등) 하지만 결과만 보면 너무나도 훌륭하고 멋진 일을 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만을 위한 일로는 결코 만족에 도달할 수 없다는, 우리가 모른 척 하기 일쑤인 명백한 진리를 보여준 영화다. 독특하고, 가볍고, 세련된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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