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의사, 첫 수술을 집도하다.

이와이 이야기

by 글쓰는 외과의사

이와이란 일본어로 축하행사라는 의미이다. 외과계열에선 첫 집도, 첫 수술로 통한다


학생 때부터 수술할 때의 몰입감이 좋아 외과로 전공을 선택하였다. 하지만 막상 외과 1년 차 레지던트가 되어보니 생각은 달라졌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병동 콜에 가끔은 수술방이 생각도 안 났다. 아니 가기가 싫었다. 수술방 다녀오면 밀린 병동 일은 누가 해주나?


이번 주에 했던 이와이는 왜 외과를 선택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다시금 떠올리게 해 주었다. 이와이 시엔 지정의 교수님이 옆에서 직접 지도해 주신다. 배를 열고 복강경 포트를 삽입하는 것부터 수술을 끝내고 마무리를 하는 것까지, 위험한 구조물들과 테크닉을 알려주시며 처음부터 끝까지 수술을 함께하신다.


'중간중간 큰소리가 나고 손을 뺏기는 게 이와이가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한숨 한번 쉬고 수술장에 들어갔다. 잘하려는 생각 말고 열심히 하려는 생각으로 들어갔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스크럽설 때와는 또 다르게 포셉만 잡아도 손이 달달거렸다. 조금이라도 피가 나면 마음은 조급했고, 화면이 잘 안 보이면 세상이 까맣게 보였다.


교수님은 이런 나와 반대로 너무도 침착하셨다. 안정된 교수님의 말투와 목소리는 사슴처럼 불안한 눈빛을 한 나를 편안하게 해 주셨다. 그리고 끝까지 내게 손을 주셨다.


덕분에 내 손 같지 않은 내 손을 제어하면서 무사히 이와이가 끝났다. 그리고 살짝의 소름과 함께 피부의 털들이 선채로 한 시간 정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외과의 매력이란 이런 것일까.


그동안 맡은 교수님에겐 너무나 죄송하지만, 수술 후에 내 환자는 교수님들 환자들보다 세네 배는 더 많이 보러 갔다. 가스가 나올 때가 됐는데 안 나오면 내가 마렵기도 했고, 배가 아프다 그러면 '수술부위가 터졌나?'라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였다. 신경을 많이 쓴 만큼 다행히 회복도 잘되었고 조만간 퇴원이 보였다. 내 눈으로 퇴원하는 걸 보고 싶었지만 파견 가는 관계로 퇴원은 다음 주치의 선생님께 전화로 들을 예정이다.


퀘스트를 깨는 기분이랄까, 하나씩 헤쳐나가는 느낌이 가끔은 버거우면서도 뿌듯하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못 보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교수님 너무 감사합니다!


슬의생의 안정원 역할의 실제 자문 모델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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