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먼지 날리도록 탈탈 털렸던 수술방

수술방 생존기

by 글쓰는 외과의사

병원에서 환자를 보다 보면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 미리 환자를 더 많이 경험해본 선배들의 한두 마디는, 열 페이지의 교과서 지식보다 도움 될 때가 있다. 특히 교수님 급의 위치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환자를 보고 올라간 자리이다. 전공의들이 교수님의 결정과 지시에 따르는 이유는 가지고 계신 지식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방대한 경험에 대한 존중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의사는 도제식 교육으로 길러진다고 한다. 특히나 수술과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아무리 영상을 많이 보고, 해부학을 공부한 뒤에 수술방에 들어가도 직접 해보지 않고는 와닿지 않았다. 단순히 배만 여는 것도 어려웠다. 복벽이 9개의 층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외웠지만, 막상 배를 열고나면 복벽은 마치 1개의 층으로 이뤄진 듯했다. 교수님께서 하나하나 짚어주고, 잡아주며 알려주면 그제야 구별이 가능했다.

특정 수술의 테크닉은 교수님 별 성향이 뚜렷이 반영된다. 전반적인 과정은 비슷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수술을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하는 개개인의 방법이 존재한다. 어떻게 하면 시야가 더 잘 보이는지, 어떤 기구를 사용하면 출혈을 줄일 수 있는지 등 경험에서 나온 테크닉을 가지고 계신다. 이런 테크닉들을 배우고 익히려면 수술방에 자주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다.



오늘은 무섭기로 유명한 A 교수님의 수술방에 배정되었다. 병동에서는 그렇게 좋으신 분일 수 없지만, 수술방에선 악명이 자자했다. 가끔 수술기구들이 날아다니고, 고성이 옆 수술방까지 전달된다고 한다. 구전동화처럼 선배들에게 건너 건너 내려온 소문이라 들을 때마다 웃고 넘겼다. 하지만 오늘 그 구전동화를 직접 체험했다.

환자 케이스가 너무 안 좋았다. 유착과 출혈로 수술이 좀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원래 복강경으로 계획했던 수술은 개복 수술로 변경되었다. 의도치 않게 커진 수술 범위와 어설픈 전공의의 보조는 교수님의 화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처음 한 시간은 잠잠했던 교수님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불똥이 튀었다. 옆에서 보조해주던 스크럽 선생님, 수술방에 있던 마취과 선생님, 밖에 계시던 서큘레이터 선생님 모두가 긴장했다. 심지어 서큘레이터 선생님은 급하게 움직이시다 대자로 넘어지기까지 했다.

교수님의 고함소리에 수술방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옆방까지 들린다는 소문은 진짜였다. 나 또한 긴장되긴 마찬가지였다. 썩션을 하면서 교수님 보비와 부딪칠 때는 어마어마하게 큰소리가 났다. 누적된 교수님의 화는 어시스턴트인 나의 모든 행위로 번졌다. 실을 잡는 법, 가위 잡는 법, 포셉 잡는 손가락의 위치 등 거의 손만 움직이면 혼이 났다. 계속해서 혼이 나고 긴장이 누적되다 보니 손을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 평소 연습하던 타이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지금 썩션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도 안 왔다. 패닉이었다.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고, 결국 몇 번의 샤우팅과 수술 집기가 던져진 후에야 수술은 종료되었다.

A교수님과 4시간을 보내고 수술장에서 나왔다. 얼굴이 창백했고 입술 색은 하얬다. 자존감은 바닥을 찍었고, 외과 선택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었다. 이렇게 수술장에서 1인분도 못하는 전공의는 대체 어떤 외과 의사가 될지 앞이 깜깜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다음날 또 A교수님 수술을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다음날 수술 또한 쉬운 케이스라고 예상되진 않았다.

그날은 꿈까지 꿨다. 수술방에 들어온 나를 보곤 교수님이 수술방 문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쫓아낸 꿈이었다.

Que sera sera. 어제의 전화영어 주제였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스페인어이다.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Que sera sera를 되뇌며 한번 더 A 교수님과 수술방을 들어가 봐야겠다. 도제식 교육의 의사란 이렇게 길러지는 것일까.


습습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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