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방의 버드 뷰(Bird's eye view)

by 글쓰는 외과의사


이식 파트의 마지막 주는 수술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밀린 수술들이 몰려있었고, 파트를 옮기기 전 펠로우 선생님 대신 1st assistant를 해야 했다. 기회가 주어지는 것엔 감사했지만, 그만큼 부담감도 뒤따라왔다. 일반 암환자들 수술처럼 병변 부위를 제거하고 끝내는 수술이 아니었다. 새로운 장기를 이어 붙이면 즉각적으로 결과가 나오는 수술이었다. 평소 소변을 못 보고 투석하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신장을 붙여줬을 때, 정상적인 기능을 한다면 소변이 시간당 400-500cc씩 쏟아진다. 성적표가 바로 나오는 수술이다 보니 더 긴장되는 게 사실이었다.


평소 자주 같이 하던 펠로우 선생님과 하는 수술이 아니었다. 이번 주는 교수님과 하는 수술이었다. 대개의 외과 의사들이 그렇듯 병동에서의 모습과 수술방에서의 모습은 다르다. 병동에서는 한없이 인자하시던 교수님도 수술방에선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번에도 걱정이 앞섰다. 수술 동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고, 타이 연습을 몇 번 더 한 다음, 주의 사항을 여러 선배들에게 물어봤다. 그리고 수술방에 들어갔다. 의외로 마음은 차분했고, 몸은 조금 경직은 되어있었지만 손가락과 손목은 유연하게 돌아갔다.


기증자의 신장은 대개 수혜자의 오른쪽 골반 근처에 위치시킨다. 뱃속이 아닌 후복막, 즉 배 뒤쪽에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신장을 넣어준다. 신장과 같이 혈관과 요관도 가져온다. 수혜자의 골반 근처, 허벅지로 내려가는 혈관에 새로운 신장 혈관을 이어 붙이고 요관은 방광에 이어준다. 환자에 따라 다르지만 체구가 있는 환자면 그 공간이 엄청 깊다. 수술방에서 수술 feild 가 깊다는 것은 그만큼 시야 확보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수술도 마찬가지였다. 허벅지 정맥이 꽤나 깊이 박혀있었고, 위로 꺼내 올리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위로 올려야 가지고 온 혈관과 이어 붙이기 수월했다. 그 과정에서 골반 안으로 들어가는 branch 혈관을 묶어야 했다. 사실 이 과정을 나한테 시키실 줄은 몰랐다. '타이(tie)'를 제대로 못하면 출혈량이 상당히 많을 혈관이었다. 그리고 놓치면 골반 속으로 사라지는 혈관이라 다시 찾기도 어려워 보였다. 외과 전공의를 시작하고 여러 번 수술방을 들어가 봤지만, 이번만큼 '타이'가 긴장되기는 처음이었다. 넘겨주신 실을 천천히 '타이' 했다. 워낙 깊어 시야 안에는 '타이'의 노트가 보이지 않았고, 손끝의 감각에만 의존해야 했다. 힘을 너무 세게 주면 실이 끊어지고, 약하게 주면 '타이'가 헐거워진다. 그 중간 지점을 잘 찾아야 했다.


초짜 외과 전공의에게 이때의 감정은 수술방에서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짧게 그 기분을 기록해두자면,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나'를 보는 기분이었다. 심장은 두근거렸지만, 머리는 차가웠다. 버드 뷰(Bird's eye view)라고, 천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집중을 하다 보니 내 모습을 내가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재출혈은 없었고, 환자는 수술이 끝나고 소변도 잘 나왔다.


분명 윗년차 선생님들과 교수님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타이'였을 테지만, 아직도 경험이 부족한 전공의에겐 꽤나 기억에 남을 '타이'였다. 덕분에 알게 모를 자신감도 조금 생겼다. 그리고 '수술방에서의 몰입'을 잠깐 엿보았다. 기회를 주신 교수님께도 감사했지만, 이런 기회들을 잘 활용하려면 내가 준비가 되어있어야 했다.


인턴시절을 포함해 병원 일을 시작한 지 이제 거의 만 3년째이다. 매번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있다. 무지함에 자책할 때도 많지만, 덕분에 배움의 즐거움도 알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어느 정도의 무지는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란 paradoxical 한 생각을 하며 11월의 이식 파트도 마무리.

수술방의 기본이지만 기본이 제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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