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사망선고만 벌써 세 번째다. 한 달에 한 번 할까말까 한 사망선고를 3주 동안 세 번이나 했으니, 꽤나 자주 한 셈이다. 사망선고 시에는 사망 시각과 자발 호흡, 동공 반사 등 해야 하는 멘트들이 있다. 환자와 보호자들 앞에만 서면 왜 이렇게 말이 안 나오는지, 어색한 시선처리와 함께 더듬거리기 일쑤이다. 병원 일들은 대개 한두 번 해보면 어느 정도 적응이 되기 마련이지만, 사망선고만큼은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세 분 모두 그때의 상황과 얼굴이 생생히 기억난다.
첫 환자는 1번 침대 80대 할머니였다. 담관암으로 수술을 하시곤 기저 질환이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내려오셨다.
새벽 4시. "환자 pupil(동공)이 열렸어요!"라는 담당 간호사 선생님의 노티에 졸고 있던 내 눈도 번쩍 열렸다. 가운을 입을 새도 없이 마스크만 끼고 중환자실로 향했다. 그 길로 환자 침대를 끌고 Brain CT를 찍었다. 다행히 CT상에선 급성 경색이나 출혈은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동공은 열려있었다. 승압제도 최대용량이었다. Vital이 너무 안 좋았다. 그 사이에 아들은 부리나케 중환자실로 왔다. 상황 설명을 드리고 환자분이 언제 심정지가 발생할지 모르니 먼저 면회부터 하고 오시라고 했다. 하지만 환자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면회를 준비하는 그 5분 사이에 심정지가 발생했다. 아들의 눈앞에서 어머니의 심폐소생술이 시작되었다. 결국 환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3-4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채로 사망 선고를 했다. 퇴근길 놀란 보호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커피 한 잔을 손에 부여잡곤 두 정거장 떨어진 지하철역까지 한참을 걸었다.
두 번째 환자는 10번 침대 50대 아저씨였다. 마찬가지로 담관암 환자였다. 수술 전에도 간 기능이 좋지 못해 불안하던 환자였다. 복통이 너무 심해 환자분의 강력한 요구로 수술을 앞당겨 한 케이스였다. 중환자실로 내려오던 날 본인의 상태가 안 좋은 걸 직감하셨을까.
"보호자한테 알려주실 거죠?"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 말씀하셨다. 걱정 마시라고, 잘 설명드리겠다고 말씀드린 후 환자를 재웠다. 그리곤 기관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기관삽관을 하면 목소리가 안 나온다. 그때만 해도 환자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한 사람이 내가 될 줄은 몰랐다.
끝없이 올라가는 승압제 요구량과, 교정되지 않는 대사성 산증에 순간 지난주 1번 침대 할머니가 스쳐 지나갔다. 왜 항상 불길한 예감은 현실로 다가오는지. 중환자실로 내려온 지 이틀 만에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 50대의 젊은 나이 탓에 환자분의 어머니가 오셨다. 보호자는 흰머리가 수북한 아저씨에게 어릴 적 부르던 이름을 부르며 "준아 왜 너가 먼저 가니, 왜 너가 먼저 가니."라며 오열을 하셨다. 보호자들의 울음소리 사이에서 겨우 목소리를 내어 사망선고를 했다.
세 번째 환자는 9번 침대 70대 할아버지였다. 신장이식 후 합병증으로 한 달 사이 세 차례 수술을 받았다. 마지막 네 번째 수술만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심정지가 발생하였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심정지에 주치의인 내게 노티도 없었다. 식당에서 방송으로 내 환자인 걸 깨닫곤 서둘러 식판을 정리하고 올라갔다.
공교롭게도 환자가 심정지가 난 시점은 위에서 언급한 두번째 환자의 리듬이 느려지기 시작한 시점과 동일했다. 두 침대를 오가며 환자를 보고, 보호자를 만났다. 2명이 동시에 사망하는 상황이 너무 버거웠을까. 처방을 내는 와중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무력감인지 상황에 대한 부담감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각기 다른 원인으로 사망 진단서를 작성했다. 공통점은 세분 모두 수술 전엔 병원에 걸어서 입원했다는 점이었다. 분명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었다. 하지만 수술 후에 환자는 걷기는커녕 가만히 누워있기도 힘들어했다. 수술도 일종의 신체 데미지(damage)를 입히는 과정이다. 환자를 낫게 하기 위함이 목적이었을지라도 원인 질환과 별개로 수술을 견딜 수 있는 환자의 컨디션도 중요했다. 특히 1번 할머니는 수술을 거절하다 아들의 권유로 수술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를 더 오래 보려고 수술을 권한 아들은 오히려 수술 후 며칠 만에 어머니를 보내드려야 했다.
환자도 보호자도, 그리고 외과 의사도 수술 결정은 항상 어렵다. 하지만 또 응당 어렵게 내려야 할 결정이 수술 결정이었다.
이번 달, 아니 올 한 해 더 이상의 사망선고는 없길 바라며 전공의 마지막 중환자실도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