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전공의 마지막 3년 차의 시작

by 글쓰는 외과의사

벌써 3년 차다. 인턴 업무를 하며 무슨 과를 선택할지 망설이던 시절이 엊그제였다. 레지던트 1년 차 첫 달, 처방과 환자에 쩔쩔매던 모습도 아직 눈에 선하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고, 지금은 치프(Cheif)다.

치프로 시작하는 3월은 정신이 없었다. 이전 글에서 남겼지만, 대학 병원은 3월은 새 학기 첫 시작이다. 나를 포함하여 거의 대부분의 전공의들 업무가 달라졌다. 달라진 본인의 위치와 업무에 적응의 기간이 필요했다.

3년 차가 되면 편해질 줄 알았다. 연차가 올라가면 몸도 마음도 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전공의 최고 연차인 3년 차, 치프는 분명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3월 첫 2주를 보내곤 기대와는 전혀 다른 현실에 당황스러웠다. 주치의를 맡지 않는 치프는 마음이 편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치프는 주치의가 아니더라도 파트 전체의 환자들을 신경 써야 했다. 지식이 많은 치프는 병동콜이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벨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려버린 지금은 병동콜 한 통에도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비교적 여유시간이 많을 줄 알았던 치프는 오히려 정시 퇴근을 못했다.

3년 차는 하루 종일 수술방에 있는다. 펠로우(Fellow)가 없는 상부위장관 파트는 치프가 수술방을 책임져야 했다. 수술과 수술 사이 비는 시간은 20분-30분. 그 사이에 병동을 들려야 했다. 아직 아무런 감이 없는 1년 차 선생님과 같이 처방을 내고, 같이 드레싱을 했다. 수술방과 병동을 오가며 하루에 예정된 수술이 끝나면 대략 퇴근시간이다. 그냥 퇴근할 수는 없다. 병동에 올라가 안 좋은 환자들을 확인하고, 주치의 선생님이 아직 못 낸 익일 처방을 내주어야 했다. 1년 차 선생님 옆자리에서 끊임없이 격려를 가장한 잔소리를 해대며 꼰대가 되어갔다. 그렇게 한두 시간가량 오버타임 후 바로 대학원 수업 강의실로 뛰어갔다. 말 그대로 주경야독의 생활이었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은 진실이라는 점이다. 치프라는 위치는 생각보다 큰 책임감을 부여해 주었다. 수술방에서 더 적극적으로 교수님과 손을 맞추게 되었고, 수술 후 환자 경과도 더욱 신경이 쓰였다. 교수님 별 안 좋은 환자들을 파악하고, 틈날 때마다 환자 기록을 열어보았다. 마치 이번 한 달 안 좋은 환자가 있으면 내 책임일 것만 같은 기분이다. 수술방과 병동에서 의도치 않은 적극성을 지니게 되었다.

순식간에 흘러간 2주였다. 일적으로 바쁨과 동시에 개인적인 일도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느끼는 바가 상당히 많았다. 덕분에 현재에 대한 감사함,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더불어 그동안 자만했었을 수도 있었던 나 자신이 겸손해질 수 있었다. 후에 더 구체적으로 글로 남길 계획이지만 인생에서의 굴곡은 예기치 않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왔다. 지금의 굴곡을 잘 이겨내고 오히려 성장의 기회가 되길 바라며 올 한 해는 수술방에서의 전공의 일기를 채워볼 계획이다.


생각해 보면 전공의 일기를 남길 수 있는 기회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병원의 일상을 좀 더 소중히 여기고, 기록하며, 아낌없이 나누어야겠다.


힘들때 마다 찾는 서울숲 한강길

All is we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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