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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삶의 목적 - 인생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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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현 Feb 25. 2025

다음으로 개인이 어떻게 살 것인지 정하고자 할 때 알아야 하는 것은 "삶" 그 자체다.  


우리는 이 우주와 그 원칙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삶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 전에 우주의 특성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보고자 한다.  


인과율


요리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레시피와 똑같은 재료를 같은 조건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조리할 때 전혀 다른 요리가 나올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조절할 수 있는 변수와 조건 하에 실험이 재현될 수 있다. 만약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그건 아마도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변수로 인한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작은 단위의 소립자들과 가장 원초적인 힘들이 작용할 때는 어떨까? 가장 작은 단위이기 때문에 다른 입자나 원초적인 힘 외의 요소가 없기 때문에 같은 조건에서는 같은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즉 미시적인 세계에서는 모든 요소가 동일하다는 조건 하에 1가지의 결과만이 나온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곧바로 다음 시점의 사건과 1:1로 이어지기 때문에 모든 현상에는 단 하나의 예견된 결과만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거시적인, 혹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떨까? 우리의 우주는 앞선 글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런 미립자의 세계가 모여서 구성된 현상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매 순간이 1:1로 대응된다. 그렇기에 과거의 모든 일은 물론이고 지금 일어나는 일과 미래에 일어날 일도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다. 즉,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필자는 운명론을 믿는다. 모든 것들은 정해진대로 발생할 뿐이고, 그에는 특정한 목적성 따위는 없다. 


어떤 이들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처럼 1:1로 작용하지 않는 현상이 있다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불확정성 원리의 정의는 "양자역학적 원리의 관점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아낼 수 없고, 두 측정값의 부정확도를 일정 이하로 줄일 수 없다"라는 것이다. 즉 인간이 사용하는 기구나 인지 능력의 범위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완벽하게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확률적 개념을 도입하여 수학적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우주의 가장 작은 단위를 100% 관측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물론, 측정에 활용하는 실험 장비까지 우주에 귀속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측정하고자 하는 공간을 시공간 개념에서 완전히 분리할 수 없다. 크든 작든 관찰하고자 하는 입자들은 주변의 영향을 받고, 그 주변을 완전히 이전과 동일한 조건에 놓고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험 장비 또한 관측으로 인해 미세하게 변화할 테고, 이전과 동일한 조건으로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는 우리가 알아낼 수 없어 확률을 도입한 개념일 뿐이지 실제 우주에서 모든 현상이 1:1로 연결된 것을 반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개념


시간에 대해서도 조금 얘기해 보겠다. 위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시점이라는 말을 썼지만 시간이란 절대적이지 않다. 지금 인류는 시간을, 정확히는 1초를 세슘 원자의 원자의 들뜸과 바닥상태를 반복하는 고유진동주파수를 이용해서 정의하고 있다. 결국 지구에 있는 세슘 원자의 상태로 시간을 정의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다른 힘들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는 환경에서는 1초라는 개념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시간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하나의 착각일 뿐이다. 상대성 이론도 이를 다룬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블랙홀처럼 엄청나게 큰 중력이 작용하는 우주의 공간과 일반적인 지구의 공간에서 각각 세슘 원자를 이용해 시간을 정의한다면 이 둘의 시간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 큰 중력에 영향을 받는 세슘 원자가 더 느리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를 보았을 때 시간이라는 것은 곧 물질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기반으로 정의된 것이니까 절대적일 수가 없으며 그 물질이 처해진 환경에 따라 반응 속도에 따라 바뀐다는 말이다. 결국 시간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다. 이 또한 다른 개념들처럼 인류가 서로 다른 개체의 인간, 즉 타인과 서로 동일 선상에서 생각하고 소통하기 위해 창조해 낸 창조물일 뿐이다. 그렇기에 과학이 점점 더 발달하며 이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원자로 나타내고자 하여도 결국 이조차도 절대적일 수가 없다.


조금 더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다. 만약 24시간 동안 항상 기온이 일정한 어떤 마을이 있고, 그곳에선 시간을 얼음이 녹는 시간에 따라 정의한다고 해보자. 1세제곱미터의 얼음 한 블록의 얼음이 녹는데 1시간 걸린다고 모두가 동의한다면 그 마을 사람들이 이를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 얼음 한 블록 속 물 분자들의 구성 상태가 고체에서 액체로 변화하는 시간을 기반으로 시간을 정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동일한 얼음 블록을 기온이 높은 사막에 가져가 똑같이 녹는 시간을 기반으로 그 마을과 같은 1시간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결국 필자의 말은 시간이 적어도 지구 한정으로는 절대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우주에서는 그렇지가 않다는 말이다. 


삶의 정의


그렇다면 절대적이지 않은 시간을 가지고 우리는 어떻게 삶을 정의해야 하는가? 개인에 대한 정의를 조금 억지를 부리면서도 정의한 바와 같이 삶에도 같은 태도를 취하고자 한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사회는 모두 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지구에 한정하여 시간을 정의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렇기에 그 흐름과 단위에 기반하여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즉 모체로부터 분리된 순간부터 하나의 생명체로써 동작을 멈추는 순간까지라고 볼 수 있겠다.


추가로 우리가 실제 하지 않는 "시간"에 대한 개념을 수용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인간은 결국 타인과 상호작용하면서 쌓은 경험과 지식으로 현재 사회를 일구어내었고 그렇게 앞으로도 살아가야만 하다. 여기서 타인이라는 범주에는 현재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는 다른 인간 개체뿐만이 아니라, 변화했던 과거의 자신 혹은 미래의 자신까지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시간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비록 과거와 미래의 자신이 현재 시점에서 실존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정의하거나 계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과거를 기억하거나 미래를 떠올릴 때 이는 상상, 혹은 일종의 시뮬레이션에 가깝다고 한다. 상상을 할 때 사용하는 두뇌의 "해마"라는 기관을 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부 과거의 기억에 오류가 생기거나 때로는 상상과 기억을 혼돈하게 되는 것이다. 즉, 과거는 시간선상에 따라 저기 어딘가 다른 곳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라진 것이고 우리가 그냥 현재 상상한다는 점에서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도 현재에 공존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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