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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고독, 고요한 찬란함

베르트 모리조의 그림 앞에서

by 두유진 Mar 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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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화풍이 이토록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단 한 단어로 말할 수 있다.

‘찬란함’이다.


빛이 흩어지는 순간을 포착하려는 그 집요한 손끝의 흔적은,

마치 우리 삶의 가장 아름답고도 덧없는 한 조각 같다.

앙리 마르텡의 점묘화처럼, 혹은 베르트 모리조의 부드러운 붓결처럼.

그림 앞에 오래 머물면 나는 어느새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부유한다.

마치 불멍, 물멍을 하듯.

빛의 터치를 바라보는 그 순간,

나는 환각처럼, 환청처럼,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이건 일종의 명상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파편들이 그림 속 찬란한 빛 속에 하나씩 녹아드는 시간이다.


특히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의 그림을 보면, 빛으로 표현된 삶의 찬란함 속에서 오히려 깊은 고독의 서사가 느껴진다.

그녀는 인상주의의 유일한 여성 창립 멤버였고, 수많은 남성 중심의 비평 속에서도 자신만의 섬세하고 내밀한 세계를 지켜냈다.


모리조의 그림에서 인물들은 자주 창가에 앉아 있다.

바깥을 바라보지만, 실은 어디에도 닿지 못한 시선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화장실에 있는 여인’을 보자.

그림 속 여인은 화려한 파티 드레스를 입고 거울 앞에 앉아 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관람자와 마주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림 속에서 의도적으로 ‘보이지 않음’을 선택한 듯한 자세다.

뒤돌아선 어깨, 손에 쥔 빗, 흐릿하게 비치는 거울 속의 모습.

이 모든 것들이 말한다.

“나는 지금 나만의 시간을 살고 있어요.”


〈화장대 앞의 여인 (Woman at Her Toilette)〉

은 여성의 일상적인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이 장면에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고독 속의 자기돌봄,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내면의 자유로움이 있다.

그녀는 단장을 위해 거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로 거울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순간만큼은 외부의 시선이 사라지고, 오직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이 장면은 감정코칭에서 말하는 ‘자기 공감의 시간‘과 닮아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치장이 아닌

내 마음을 정리하고 위로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

우리는 종종 이런 고요한 순간 속에서 가장 진실된 나를 마주하게 된다.


거울 앞의 여인에게서 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려는 연습을 본다.

그녀는 말없이 내게 속삭인다.


“가끔은 세상이 아닌, 나를 위한 단장이 필요해.

그게 나를 돌보는 첫 걸음이니까.”


그건 우리 일상에서 느끼는 무심한 듯 선명한 감정들과 닮아 있다.

어떤 날은 말하고 싶지 않아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해도 닿지 않을 것 같아 조용히 눈을 감는 날이 있다.

그런 날, 나는 모리조의 그림 앞에 선다.

말 없이 나를 바라봐주는 그 여인의 시선은, 마치 나의 내면을 알아채는 듯하다.


“괜찮아, 너의 고독은 이상하지 않아.

그 또한 너의 삶의 일부야.”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나는 비로소 내 감정을 정리하게 된다.


그림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그림이 먼저 이해하고 품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 코칭이란, 마음의 빛과 그림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다.

그림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조금 더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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