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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선이 나를 안아줄 때

메리 카사트의 그림 앞에서

by 두유진 Mar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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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눈빛 하나에 위로받는다. 말보다 먼저 닿는 따뜻한 시선, 사랑이 묻어나는 눈맞춤. 메리 카사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런 순간들이 천천히 되살아난다. 아무 말 없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듯한 그 눈빛, 그림 속 엄마와 아이의 마주보는 시선은 마치 우리 모두의 기억 속 가장 안전한 품을 불러오는 듯하다.


메리 카사트는 여성이자 예술가로 살아야 했던 시대에,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그렸다. 인상주의라는 화풍 아래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화폭에 단 한 번도 화려한 거리나 풍경을 담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마주한 것은 침묵 속에서 울리는 사랑,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진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담담하게 품고 있는 여성과 아이들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 되는 큰 이야기를 그리지 않겠다. 나는 매일의 작은 순간 속에서, 진짜 삶을 기록하겠다.”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나 유럽을 오가며 성장한 카사트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고전을 베끼며 그림을 익혔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적 눈을 뜬 건, 에드가 드가를 만나고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며 자신만의 시선을 발견한 이후였다. 그녀의 그림은 점점 선명해졌고, 동시에 더 부드러워졌다. 한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는 엄마의 손끝, 조용히 책을 읽는 여인의 옆모습, 서로 기대 잠든 두 사람의 숨결까지. 그녀는 고요함 속에서 깊은 울림을 만들어냈다.


특히 그녀의 작품은 ‘여성’이라는 존재를 단순히 모성의 상징이나 이상적인 대상으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 숨어 있는 고단함과 책임, 그리고 그것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깊이를 담아냈다. 그것은 남성 화가들이 쉽게 그려내지 못한 영역이었고, 그녀의 그림이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또한 카사트는 일본 판화에 큰 영향을 받았는데, 그 흔적은 그녀의 구성과 색감 속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비워진 여백, 대담한 구도, 그리고 절제된 색의 조화. 이 모든 요소들은 그녀의 그림을 더욱 현대적으로, 그리고 감각적으로 만든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강렬하고, 조용하면서도 단단하다.


나는 카사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문득,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의 떨림을 떠올린다. 나를 바라보는 작고 맑은 눈동자, 그 눈빛을 마주했을 때 밀려온 벅찬 감정. 말로는 다 담을 수 없었던 그 순간이, 그녀의 그림에서는 자연스럽게 살아난다. 그것은 기억이 아니라 감각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그림이라는 형식을 통해 오늘의 우리를 다시 감싸 안는다.


메리 카사트는 말년까지 독신으로 지내며 예술에 전념했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녀의 삶이 덜 풍요롭거나 외로웠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의 삶을 자신의 그림 안에 담아냄으로써, 더 많은 사랑을 세상에 남겼다. 그녀는 ‘모성’을 경험으로서가 아닌, 깊은 공감으로서 그려냈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예술의 힘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오늘도 나는 그녀의 그림 앞에 서서 잠시 멈춘다.


그리고 생각한다.

“세상은 결국, 따뜻한 시선을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나아가는 게 아닐까.”


메리 카사트가 바라보았던 세계처럼, 나 역시 누군가의 작은 순간을 소중히 바라볼 수 있기를. 말보다 더 진한 사랑이, 눈빛 하나에 담겨 전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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