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배우고 싶어서
화장실 문 앞에 쓰러져 있는 동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허리 통증 부위를 중심으로 마치 척수에 무통주사를 넣었을 때 느낌처럼 차가운 뭔가가 촤-악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 뭐 피나나?’ 싶어서 등을 만졌는데 식은땀으로 흥건해서 옷이 다 젖어있었다. 땀이 난지도 몰랐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겁이 났다. 아이를 불러서 아래 옷을 입혀달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를 저기 이불 위로 끌어줄래?” 하며 딸에게 부탁을 했다. 딸은 한쪽 팔을 잡고 나를 열심히 끌기 시작했다. 군말 없이 도와주는 5살 딸이 고맙고 현재 나의 유일한 보호자라는 게 서글펐다.
그렇게 다시 누워서 119를 불러야 하나 고민했다. 이런 말들은 덜 아프고만? 싶겠지만,, 양치도 안 해서 입냄새 나고 , 속옷도 안 입었고, 우리 집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싫고, 구급차가 너무 눈에 띄어서 주목받는 거 싫은데 너무너무 연락하기가 싫었다. 처음이어서 더 어려웠다. 우선 외출 준비라도 하자 싶어 딸의 도움으로 누워서 양치를 했다. 옷도 왠지 검사할 때 결국 벗어야 할 것 같아 속옷은 포기하고 바지만 갈아입었다. 다시 혼자의 힘으로 일어나려고 시도를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러다가 하반신 마비 오는 거 아니야? 덜컥 겁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허리는 6시간 전에 삐었는데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니 하체를 아예 못쓰게 될까 봐 무서운 마음이 컸다. 그 생각을 하니 창피함을 무릅쓰고 119에 연락하게 되더라. 모든 전화가 통화 중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119를 찾는다고? 기다리다 전화를 끊었는데 카톡으로 링크가 왔다. 서면접수링크였다. 나처럼 말보다 글 쓰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메뉴 같았다. 자초지종 서면신고를 하고 누워서 기다리고 있었다. 곧 얼마 가지 않아 119에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 현재 나의 상태와 사건발생시각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뭐지..? 이 든든함은...? 곧 구급차를 보낸다는 연락을 마지막으로 계속 대기하고 있었다.
잠시 후, 미리 알려준 집 비밀번호를 누루고 그들이 왔다. 초면인데 내 독립적인 공간으로 들어왔다니! 충격적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다. 소방관들은 누운 채로 채혈을 하고 내 상태를 진술했다. 걸어 나갈 수가 없어서 들 것이 안방까지 들어왔다. 들 것은 접힌 채 의자처럼 되어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어쩔 수 없단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의자에 올라탔다. 종합병원 응급실로 갈 건데 보호자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절연한 엄마한테 다시 연락을 하느냐, 운전을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 만삭인 지인한테 연락을 하느냐 고민을 했다. 그리고 지인한테 연락을 했다. 몇 시간만 옆에 있어줄 수 있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지인은 흔쾌히 나오겠다고 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자마자 소방관이 들 것을 평평하게 폈다. 그리고 구급차까지 달그락달그락하며 이동을 했다. 구급차에 실리는 동안도 내 N력은 어디 못 갔다. ‘와.. 하늘 이쁘다. 아파트 천장을 누워서 또 언제 보겠나.. 우와 저게 우리 동의 옥상 부분이구나.. ’ (구급차에 탑승 후) ‘구급차가 꽤 작은데 있을 거 다 있구나, 알차다! 드라마 세트차 같아..‘ 고통을 연속으로 겪으면 염세주의가 판을 친다. 또 해학적 능력도 비례한다. 신기하다 모드를 장착하니 어쩔 수 없는 이 상황들이 웃기고 서글프게 다가왔다. 가는 길에 만삭인 동생도 함께 구급차에 태우고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은 휴일과 주말에만 가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현재 내 상태도 외래진료를 보기는 어려운 응급한 상태라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됐다. 그래도 무사히 도착했다. 의사 선생님이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여자 소방관님이 내가 초진을 볼 때까지 옆에 같이 서서 기다려 주셨다. 무심한 온기가 감사했다. 나가시는 소방관님을 바라보며 값을 지불하지도 않았는데 처음 본 사람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구나. 소방관님들 정말 멋지다. 감사하다.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디스크 같은데? CT랑 MRI 한번 찍어봐야겠네요?”라고 하셨다. 네..? 디스크라니요.... 나는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