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도록 무서운 습관
넋이 반쯤 나간 출근길에서, 좀비처럼 내려 어딘가로 향하는 내 발걸음. 그 목적지는 회사가 아니라 근처 커피숍이다. 자연스런 걸음으로 카운터에 가서 익숙한 억양과 음정으로 '아이스아메리카노 하나요.'하고 주문을 한 뒤 멍 때리기를 시작한다. 어느정도 지났을 무렵에 빨대 통에 가서 미리 빨대를 싸고 있는 봉지를 까놓고 기다린다. 그러다보면 내 커피가 나왔다는 소리가 들리고, 빨대를 꽂고 '안녕히계세요'하고 길을 나선다.
놀랍게도 위의 일상은 내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 아침마다 지내고 있는 것이었다. 인식하지 못한 새에 나의 아침은 이 상황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간다. 가끔 그래서 나는 내 스스로를 레고 세상에 들어와있는 하나의 소형 기계가 아닐까 하는 상상속에 빠진다. 내 의지가 아닌 그 무언가가 이끄는 대로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커피를 즐기냐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없다. 나도 내가 커피를 즐기는 건지, 커피가 나를 즐기고 있는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우리가 가진 습관 중에 그런 습관이 또 있을까? 커피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주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인지, 위의 일상을 지내고 아침을 보내지 않으면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휩싸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주변 회사 동료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커피를 좋아한다고 답하기 보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필수 아니냐며 나에게 반문할 뿐이다. 진정한 커피애호가도 물론 극소수로 있긴 하지만, 그래도 대다수는 자신들이 왜 커피를 먹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따져볼 생각조차, 아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음에 놀라웠다.
커피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별안간 슬픈 마음이 자리잡았다. 현대사회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일상으로 자리잡아 버린 이 커피가 한편으로는 이 시대의 아편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커피를 마시면서도 언제, 몇잔을, 얼마나 마셨는지 모르게, 일하면서 계속 먹다보니 진정으로 커피를 즐기는 것은 거의 손에 꼽는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부디 이번 주 주말엔 모두가 짬을 낼 수 있기를. 그래서 그 시간에 여유롭게 진정한 의미의 커피를 즐겨보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