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음(善)을 추구한다, 끝없이
Philos(사랑)+ Sophia(지혜) = Philosophy가 되었다. '철학'이라는 것은 위의 두 뜻이 결합된 것으로, 직역하자면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본래 이 용어는 피타고라스의 저작에서 처음 사용된다. 함축적으로 지혜에 대한 끝없는 사랑, 추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0년이 지났어도 Philosophy(철학)의 어원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받았던 감동은 그대로 기억난다. 말 그대로 지혜에 대한 사랑이며, 지혜 그 자체를 우리가 가질 수는 없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끝없이 추구하는데서 그 아름다움이 있다. Philos란 단어는 방향성을 뜻하는 것으로 굉장히 '역동적인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간혹 철학자들의 철학은 그들 삶의 원동력이 깃들여져 있어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듯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는 그들의 삶 자체가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철학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Philos를 떼어내고 생각할 수 없다. 매일 살아가며 우리는 무언가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또한 그렇게 무언가를 추구하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플라톤의 가르침을 참고하자면, '좋음을 추구'하는 것은 누구나 똑같을 것이고 그 누구도 좋지 않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마다 좋음의 내용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그 결과로 행복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럼 지금 우리가 추구하며 끝없이 사랑하는 대상은 무엇일까? 나는 제대로 된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각자 다른 행복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플라톤이 제시한 '절대적으로 좋은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살아가고자 한다. 플라톤의 '이데아' 혹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절대 선(善)'으로 표현되는 것, 절대적 좋음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결국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행복에 따라 행위하다 보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언젠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내 방향키는 적절히 맞춰졌는지 염려되기도 한다. 내가 지금 절대적 좋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면, 길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경계를 놓치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삶을 살아가며 추구하려는 마음 또는 어떠한 대상을 사랑하는 데서 행동하게 되고, 그 행동에 너무 몰두하게 되면 가끔 '왜 이걸 하지?' 혹은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본질적 질문에 답을 못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는 주객전도의 상황으로 항상 경계해야 한다. 어느 시기이던 우리는 삶에 대해 '염두' 하며, '좋음'을 추구하는지 스스로 지켜보자. 나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 의미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이며, 또 이를 행하기 위해 나는 어떤 방식을 써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우리도 끝자락에는 진정한 삶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