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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버 Nov 27. 2021

"아빠, 나한테 사과해줘"


티빙에서 영화 '세 자매'를 보았다.

영화 '82년생 김지영'보다가 가슴이 너무 답답해져 반도 못 본 나지만, 공감 가는 상황이 더 많아서였을까? 왠지 몰입해서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영화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하나씩 결함(?)이 있는 세 자매의 현재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들의 어린 시절에는 폭력적이고 차별하는 아빠와 주변 어른들이 있었고, 어떤 결핍이 성인이 된 현재까지도 그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지 퍼즐처럼 맞춰진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사는 둘째 딸과 손녀의 대사였다.


 "아버지, 우리에게 사과해주세요."
"왜 어른이 되어서 사과도 못해?"


  






태어나서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되었을 때부터 느꼈던 성차별. 그땐 '차별'이라는 생각조차 못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네가 아들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꼬추라도 달고 나오지 그랬냐"



폭력적인 아빠와 우리 자매에게 항상 차가웠던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친척 어른들.


가부장적인 집안의 장남인 아빠와 결혼해서 딸만 내리 4명을 낳은 엄마는 항상 죄인이었다. 고모들이 아들을 줄지어 낳았지만 친손자를 갖고 싶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자매와 엄마에게 차가웠다.



첫째 딸은 살림밑천이니 OK!

둘째도 딸이네? 조금 아쉽지만 OK?

셋째는 임신 초반부터 용하다는 점쟁이들한테 물어보니 아들 사주라네? 근데 딸??



나부터는 미역국도 못 얻어먹었다던 엄마는 동생까지 초음파 결과 딸임을 알고 지우려고 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다시 병원 가서 초음파를 보니 개월 수에 맞지 않게 너무 선명하게 보이던 아기 때문에 차마 지우지 못하셨다고.(낳기로 결심하고 그 뒤로 병원을 가서 검사할 때는, 오히려 그때만큼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고 하니 인체는 참 신비하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자매는 남아선호 사상에 찌든 어른들의 말과 행동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았다.

차별받는 게 일상이라 너무 자질구레해서 말하기도 민망한 일들도 많았지만, 그 자질구레한 것들이 우리를 갉아먹었다.


할아버지는 아들을 낳으면 당시로서는 꽤 큰 금액의 돈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을 정도로 간절해하셨다.

그러나 줄줄이 딸딸딸이니... 효자인 아빠는 불효를 했다며 괴로워했고, 엄마는 아빠와 주변 어른들께 뭐가 그리 죄송한지 항상 죄송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젊은 시절의 엄마, 아빠는 우리 자매의 마음까지 살필 여유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릴 때의 기억은 마트에서였다.

앞서가는 아빠 뒤를 졸졸거리며 쫓아가다가, 앞뒤로 흔들리는 아빠의 손을 잡았던 것 같다. 손에 쏙 들어온 내손을 만지작 거리던 아빠는 고개를 돌려 나를 한번 슥-보더니, 메마른 눈빛으로 내 손을 놓았었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나를 예뻐하는지 싫어하는지는 안다.

그때의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앞서가던 아빠의 손만 바라보다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빠 손을 잡았던 것 같다. 그런데 무심하게 손을 놔버리던 아빠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는 아빠나 시댁 어른들과 갈등이 있을 때면 우리가 딸이라서 그렇다는 말을 하곤 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만큼이나 듣기 싫었던 말이 '고추 하나만 달고 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였다. (어렸을 때는 고추를 달고 아들로 태어나면 특별한 능력이라도 탑재되어 나오는 줄 알았다)








'내 존재가 잘못된 걸까?'라는 생각은 중학생 즈음에야 '내 잘못이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바뀔 수 있었고, 나는 반대급부로 가정 내 성차별에 아주 예민하고 혐오하는 사람이 되었다.


성인이 된 지금 나의 어떠한 결함을 어린 시절의 환경 탓으로 돌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오히려 항상 불안정하고 어딘지 모르게 결핍되어 자존감이 낮은 나의 '성격 탓'을 해왔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어린 시절의 상처를 말하는 건 힘들고, 싫은 일이다.


어른이니까.. 오래된 일이니까...

남 탓. 환경 탓. 하는 구린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스스로도 싫다.



그런데 한 번쯤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아직 울고 있는 내 마음속 어린아이를 '어른답게' 보듬어주고, 보내주기 위해서는 그저 시간만이 답이 아니고, 정신과 약만이 치료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마주하기로 했다.

여전히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인 것처럼 행동하는 아빠에게 처음으로 얘기했다.



"아빠 우리한테, 그리고 우리 어린 시절에 사과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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