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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버 May 02. 2022

당신의 이혼을 축하합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다.


허무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소원이었는데, 제발 이혼하라고 얘기할 때마다 같이 사는 게 맞는 거라면서...

결국은 이렇게 될 걸 왜 그렇게 자식들한테 상처 주며 살았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래도 엄마는 처음으로 자유를 얻은 기분이라 하니 이제라도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말을 삼켰다.

아빠는 본인이 큰 집을 차지하고 조금이라도 재산을 더 가져가려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며 측은한 마음 따위는 들지 않도록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나는 예전보다 불안도가 많이 줄었고, 처음으로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서 공부도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게 생겼고 되고 싶은 내 모습이 그려졌다. 남에게는 하지도 못할 온갖 나쁜 말을 나에게 쏟아부으며 나에 대한 혐오로 가득 차 있던 내 마음이, 처음으로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은 아니구나, 나도 나 자체로도 가치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을 했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이 칭찬을 해줘도 나는 공부까지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취업도 연애도 곧잘 하고 첫인상을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진짜 내 모습을 안다면 분명 나를 싫어할 거야'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을 잘하고, 외모를 잘 가꿔서 나를 잘 포장하면 진짜 내 모습을 들키지 않을 수 있겠지?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니까.





몇 달 사이에 변한 내 마음이 스스로 신기하면서도 좋았지만 한편으론 불안했다. 이런 평온한 마음 상태가 깨져서 나를 혐오하던 예전으로 돌아갈까 봐. 하루 종일 '왜?'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별다른 계기가 없었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자아존중감'으로 귀결되는 많은 자기 계발 서적을 읽고 심리상담을 받고 정신과 약도 먹었지만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옥 같던 검찰청을 그만두었을 때에도, 결혼을 통해 도망치듯 아빠와 떨어져 살게 되었을 때도 이렇게 마음이 평온한 적이 없었다.





내가 온전히 나라는 사람을 들여다보고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이혼과 아빠와의 완전한 분리 덕분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아빠가 죽는 게 소원이었다.



아빠의 퇴근시간이 되면 가슴이 쿵쾅거렸고, 지금이라면 신고하고도 남았을 가정폭력을 그대로 겪었다. 딸이라서 엄마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용기 내서 아빠 앞을 가로막던 날,  내 눈알을 파버리겠다며 가위 들고 달려들며 내 뺨을 때리던 아빠의 모습은 아직도 꿈에 나온다.


23살의 첫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고 그저 내가 한심하다며 창피해하셨다. 아빠에게 도망치듯 결혼했지만 엄마는 전화할 때마다 아빠 욕을 했고 명절에 모이면 아빠는 어김없이 사위들이 있음에도 불안한ㅊ상황을 만들곤 했다.



부모님이 이혼하신 뒤로는 명절, 생신 외에는 아빠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웠고, 엄마에게 아빠 욕을 들으며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안했다. 겨우 몇 달만에.


부모님의 이혼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구나 라는 생각에 씁쓸했지만 이제 진짜 나에게 집중하자고 마음을 잡았다.





그리고 오늘은 아빠의 생신이었다.

착한 딸들은 새로 생긴 식당의 룸을 예약하고 용돈과 케이크를 준비했다. 귀여운 조카들과 함께 사랑하는 아빠의 생신을 축하한다며 노래를 불렀다.


여지없이 술을 마시던 아빠는 엄마가 당신의 생일 축하 자리에 안 온 것이 못마땅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다음에는 착한 여자를 만나겠다며 엄마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클로버 네가 서울에서 혼자 살 때 왜 힘들어했는지 알겠더라~ 아빠는 요즘 하루 종일 라디오 틀어놔 쓸쓸해서..." 라며 그 시절의 나를 이해한다며 웃어 보였다.


내가 왜 힘들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알았더라도 너답게 이겨내라고 껍데기 같은 말만 하며 엄마에게 신경 안 쓰고 뭐했냐며 또 싸웠을 부모님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혼자 고립되는 걸 선택했던 그때의 내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직한걸 들킨후에 어쨌든 싸우셨지만)




오늘은 언니와 형부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다.

세상 착한 형부는 웃으며 화제를 돌리려 노력했고, 어린 조카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빠는 계속해서 엄마를 비난하며, 본인을 세상 불쌍하고 착한 남편으로 포장했고, 나는 그런 모습에 화가 나기보단 소름이 끼쳤다.

정말 본인이 했던 행동을 잊은 건가?




"그래, 아빠도 혼란스럽겠지, 답답한 게 있겠지. 그래도 다음에는 들어주지 말자" 생각하고 집에 왔는데 일이 손에 안 잡히고 허탈한 기분만 들었다. 부모님의 감정 쓰레기통 노릇을 가장 많이 했던 착한 언니는 그래도 오늘 봐서 반가웠다며 먼저 연락을 해왔다. 각자의 생활이 있기에 자매들끼리도 모이기 쉽지 않아서 모이는 자리 하나하나가 소중한데 그걸 아빠가 또 망쳤다. 나는 언니에게 답장을 보냈다.


나는 아빠를 1년에 3번 뵐 생각이야.
그런데 앞으로 이런 얘기 또 하면 인연 끊을 거야. 나이가 들수록 우리한테 왜 그랬는지 더 이해가 안 돼. 아빠 재산 욕심도 없고 자식 될 도리는 이미 차고 넘치게 했으니 후회 없을 것 같아.


진심으로 내 마음이 그랬다.

아빠가 돌아가셔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




가정폭력을 고백하는 양치승 관장  [MBN '더 먹고 가']







필력이 뛰어나지도 않은 글을 구독해주시고 4달 동안 업데이트 없는 공간에 머물러 주셔서 놀람과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나눴던 따뜻한 마음들에 많이 위로받고 힘도 얻었어요.

 

더 나이가 들어 돌아봤을 때 '이런 걸로 이렇게 힘들어했나? 어렸네..' 싶을 수 있는 젊은 시절의 일기장이 하나쯤 가지고 싶어 졌어요. 계속 엉성하고 재미없겠지만 이따금씩 일기처럼 쓰는 글을 봐주시고 좋은 얘기 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어 뜬금없이 인사드려요. 마지막으로 SNS에서 본 글귀인데 적어봅니다.



자꾸 그렇게 맨발로 다니면 안 돼.
자기 몸은 자기가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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