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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imming Aug 19. 2024

나를 기르는 법 7_은색 구두를 버렸다.

소비, 소유 그리고 행복의 상관관계



내가 좋아하던 은색구두를 버렸다. 신발 밑 창이 떨어져서 더 이상 신을 수 없었다. 버리면서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 제 기능을 다 해 버리는 것이 퀘스트를 깬 것처럼 기분 좋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물건 사는 걸 좋아하고 꽤 자주 사는 것 같다. 옷, 신발, 가방, 액세서리, 화장품, 피부과 진료, 책, 소품, 식료품 등 소비 범위는 다양하다. 대학생과 인턴 때는 번 푼돈 대부분을 물건 사는데 썼다. 그렇지만, 내가 맥시멀리스트이자, 과소비러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유튜브나 SNS에는 인플루언서뿐만 아니라, 일반인인 직장인, 학생도 여름옷 하울, 가방 언박싱이라는 소비 콘텐츠를 올리며 10가지 넘는 물품을 보여줬기 때문에,  나는 내 소비는 적정하다고 생각했다.



5평짜리 자취방에 살게 된 것이 소비 습관을 되돌아보게 된 첫 번째 계기였다. 5평짜리 자취방에는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한정적이다. 본가에서 자취방에 가져갈 옷과 신발, 물건들을 정리하며 내 옷장에 있지만 단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옷들, 두세 번 들고 가지고 다니지 않는 가방 그리고 신지 않는 신발들, 귀엽다며 사놓고 쓰지 않는 메모지, 의미 없는 인형들을 마주치게 되었다. 만약 내 물건들에 입이 있었다면, 어느 공포영화 속 저주받은 인형처럼, 자신을 처박아두고 잊어버린 나를 저주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쁘다고 샀지만 내 스타일과 맞지 않는 옷들, 살 빼면 입겠다고 다짐한 옷들이 한가득이었다. 당근에서 헐값에 옷을 팔면서, '도대체 이 옷을 왜 샀지', '몇 번이나 이 물건들을 썼지'라는 답 없는 생각들만 떠올랐다.


 다 쓰지도 못하고 버리는 화장품과 옷들을 보며 내 과잉 소비를 한 발짝 멀리서 바라봤다. 그러면서 물건을 다 쓰고 사겠다고 다짐했다. 곤도 마리에의 [정리의 힘] 책도 읽어보고, 미니멀리스트 유투버의 삶도 찾아보며 정신교육을 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온갖 마케팅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잘 지켜지지 못했다. 휴대폰에는 광고 알림이 수시로 울리고 길을 걷다가도 내 눈을 이끄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살 생각이 없던 것들도 한 번 광고를 보고 나면 사고 싶어 진다. 올리브영 세일 알림이 오면, 살 것이 없는데 괜히 올리브영 앱에 들어가서 상품랭킹을 보고 '세일기간인데 지금 샀다가 나중에 쓰지 뭐~'라는 안일한 생각을 한다. 이러면서 쌓아둔 립스틱이 몇 개던가.


절제 다짐이 유야무야 하게 흘러가던 중, 소비와 소유를 되돌아보는 두 번째 사건이 발생한다. 나이키에서 판매하는 한정판 모델이 너무 갖고 싶었다. 신발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취방 신발장에만 이미 4켤레의 운동화가 있었지만, 한정판에 대한 집착이 심했고 일하면서 수시로 당근과 크림 사이트에 들어가 매물이 들어왔는지 확인했다. 이 집념 끝에, '한정판'신발을 구했지만 막상 구하고 나니, 신고 다니기는커녕 두세 번 신고 신발장에 모셔두는 '모셔템'이 되었다. 1~2만 원 하는 신발도 아니었는데, 이 신발을 갖고 싶어 광적으로 집착하던 내 모습과 '모셔템'으로 전락한 현 상황이 대조적이어서 자조적인 웃음이 났다. '결국 난 이 신발을 신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단순히 소유하고 싶었을 뿐이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물건을 왜 소비하고 소유하고 싶을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 물건을 소유하게 되면 행복할 거 같았다. 모델이 입은 옷을 사면, 나 역시도 모델처럼 보일 것 같았고 아이돌이 선전하는 화장품을 바르면, 투명한 피부와 복숭아 빛 입술을 가지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사랑받게 될 거라는 은근한 기대를 한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물건의 소유가 행복을 가져와 줄 것이라는 것은 착각이었다. 원하던 물건을 가져도 소유의 기쁨은 잠깐이고, 또 다른 물건을 원하게 됐으니까.


소비와 소유는 행복의 답이 아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행복을 바라는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된 흰 티와 청바지, 에코백을 들어도 사랑스럽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비어있어야 다른 것 들을 채울 수 있듯이, 다른 행복을 채워 넣기 위해 나는 소유를 내려놓기로 했다. 그러면서 배움, 경험, 생산, 절제하는 활동을 통해 삶의 풍족함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뜨개질로 가방과 코스터를 만들면서 필요한 것을 나 스스로 만들어 냈다는 것에 기쁨을, 난생처음 스노클링을 하며 물속에서 햇빛이 무지개색으로 빛난다는 새로운 경험을, 인센스를 피워두고 유튜브 재즈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글 쓰는 잔잔함을, 발레와 요가를 통해 몸을 단련하고 수련하며 절제를 느꼈다. 그렇다고 내가 아직 소비와 소유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소유를 통한 행복은 손바닥을 채운 물같이 금방 사라질 것을 안다.


나는 소유하는 존재가 아니라, 경험하고 생산하는 주체일 때 삶의 풍만함과 자유로움을 느낀다. 이렇게나 내 세계의 행복은 작고 고요하고 평온하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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