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바라보는 시간
벌써 발레를 배운 지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났다. 중간중간 빠지거나 쉬기도 했지만, 한 운동을 1년 6개월이나 한 적은 처음이다. 발레를 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오~ 유연한가 봐?”라는 반문이다. 하지만 나는 발레 하는 사람치고 유연한 편은 아니다. 아직 다리를 찢거나 올리는 동작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어정쩡한 각도로 다리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원래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체육’ 과목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몸 쓰는 것을 워낙 못하기도 했다. 무엇을 만들거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하는 일에는 꽤 자신이 있었지만 운동, 춤 등 몸으로 하는 건 영 자신이 없었다.
필라테스, 1:1 PT, 수영 등 여러 운동에 도전했지만 3달을 넘기지 못했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 우연히 발레콩쿠르 영상이 떴는데, ‘에스메랄다’라는 곡에 맞춰 발레를 하는 영상이었다. 발레는 하얀색 풍성한 치마(튜튜)를 입고 고상하게 무용을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 영상 속 발레리나는 빨간색의 강렬한 옷을 입고 탬버린을 이용해 집시를 열정적으로 연기하고 있었다. ‘이런 것도 발레라니!!’ 충격을 받았다. 마치 김연아 선수의 록산느 탱고를 본 느낌이었다. 그렇게 발레에 관심을 갖게 됐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귀신같이 내 마음을 눈치챈 건지, 발레로 자세교정과 다이어트 효과를 봤다는 후기 동영상과 연예인들 영상이 올라왔다. 추천 영상 중에는 중학교 영화감상부 시절, 교실에서 봤던 ‘빌리 엘리어트’ 영화도 있었다. 주인공인 빌리는 남자 아이고 발레에 흥미와 소질이 있다. 빌리의 아빠는 그런 빌리를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빌리의 무용을 보고 난 후, 아빠는 빌리를 응원하게 된다. 30살이 된 내게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인상적이게 남아있다. 성인이 된 빌리가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며 뛰어오르는 모습. 여러 영상을 보고 나니, 발레를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상태가 되었다.
발레를 처음 하며 느낀 건 ‘미친 거 아냐?!! 너무 힘들다.’라는 마음이었다. ‘발레리나, 발레리노는 영상 속 항상 평온하고 우아하게 웃음 짓고 있었는데, 다 거짓말이었어!!‘라는 억울함이 들었다. 발레를 하려면 유연성, 근력, 지구력 모든 게 필요하다. 종합운동이다. 발레를 할 때, 스트레칭부터가 난관이다. 180도로 다리를 찢고 골반을 열고 하다 보면 온몸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몸이 나에게 ’ 너 10시간 넘게 앉아 있다가 갑자기 왜 이래 ‘라는 느낌이다. 발레 기본 동작은 발, 종아리, 허벅지, 골반을 턴아웃 시켜 양 옆으로 최대한 열고, 엉덩이와 허리, 배에는 힘을 주는 자세다. 가슴은 벌어지지 않아야 하고 등 뒤는 조여서 양팔을 벌려야 한다. 꼭두각시 인형이 실에 매달린 것처럼, 배부터 머리에 실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키가 커진 느낌으로 끌어올려야 (풀업)한다. 글자로 설명해도 쉽지 않은데, 실제로 해 보면 더 쉽지 않다.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온몸에 항상 힘을 주고 서있어야 한다. 놀랍게도 이게 기본 서있는 동작이라는 거다.
여기에 발 포지션을 바꾸고, 손과 발을 맞춰하려다 보면 10분도 안 돼서 땀이 온몸을 적신다. 그리고 ‘아, 발레리나(발레리노)가 왜 마른지 알겠다. 매일 이걸 몇 시간씩 한다고?! 사람이 아니다.’라는 존경심이 생긴다. 순서와 포지션마다 동작이 달라서 동작을 외우는 것도 고난이다. 어쩔 땐 ‘운동을 담당하는 내 소뇌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든다. 거울로 본 내 모습이 발레 선생님이 알려준 자세와 같은 걸 하는 게 맞는지, 어떻게 이렇게 뚝딱 거릴 수 있는지, 웃음도 난다. 발레 수업을 한 다음날에는 항상 허벅지와 엉덩이가 아픈데, 은근한 쾌감이 있다. 실력이 느는 건지 아닌지 모르는 미궁 속에서 1년이 지났을 때쯤, 자세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 이야기를 들으니,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으면서 뿌듯했다. 오랜 수험생활로 나는 말린 어깨와 구부정한 허리, 짝다리가 심했는데 그런 자세들이 발레를 하다 보니 조금씩 교정되어 가고 있었다.
발레를 배우고, 좋아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발레 공연도 보러 다녔다. 매번 발레리나, 발레리노가 대단해 보였다. 아무 도움 없이 본인 힘을 가지고 점프를 하고 다리를 올리고, 턴을 한다. 몸의 힘 본디 그것만을 쓴다는 게, 매력적이다. 그러면서 클래식 연주에 맞춰 연기를 하고 동작을 한다.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을 봤었는데, dying swan이라는 곡에 맞춰 무용을 할 때, 정말 사람이 된 백조가 죽을 것 같이 보였다. 이외에도 로잔느 콩쿠르 영상과 최근 전민철 발레리노 영상까지 보며, 발레에 더 빠져버렸다. 발레는 예술과 몸, 이 2가지 조화를 몸을 통해 정점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난 발레를 하면서, 내 몸을 가꾸고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전에는 살아가기 위해 생리적 욕구를 충족하던 수단이었다면, 발레를 통해 내 몸을 인식했다. 몸은 본디 태어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던 것이라, 몸도 가꾸고 돌봐줘야 한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내 몸에 있던 유연함과 힘을 기를 수 있었다. 거울 속 안 되는 동작을 하는 나를 보며, 몸 상태를 인지할 수도 있었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시 구절처럼 이 시간을 겪으며 몸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면서, 긍정성도 회복했다. 마르고 날씬해야 한다는 생각은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발레를 시작한 지 별로 안되었을 때도, 이런 생각들 때문에 거울을 통해 보이는 내 몸이 싫었다. 마르지도 않았고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몸. 단점이 많은 몸이라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몸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몸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은 목욕할 때 정도였다. 몸을 인식하기 전부터, 이상적인 몸과는 비교되는 나의 몸에 부정적 인식만 쌓여갔다. 그래서 민소매나 반바지도 잘 입고 다니지 못했다. 하지만 발레를 하려면 거울을 통해 동작하는 몸을 봐야 한다. 이런 시간들이 축적되자, 자연스럽게 몸을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팔뚝살이 좀 있지만 부끄럽진 않았다. 그것보다 가슴을 펴고 등 뒤를 조이는 동작을 제대로 해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싶었다. 목과 팔이 긴 편인 점도 알게 되었다. 몸을 온전히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니, 몸을 잘 가꾸고 사랑해 줄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 사진에 뚱뚱하게 나오든, 살이 찌든 크게 중요치 않다.
누군가는 몸이 그저 정신을 담는 그릇에 불가하다고 하지만, 나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명언을 좋아한다. 올바른 그릇에는 무엇을 담 든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친구들이 우스개 소리로 나에게 ‘거의 뭐 발레리나야‘라고 말한다. 그 말이 왠지 뿌듯하다. 야근과 수많은 약속 유혹을 제치고 발레를 다니는 자신이 멋지기까지 하다.
그러니 미래의 아마추어 발레리나는 오늘도, 아무튼 발레 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