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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imming Sep 02. 2024

나를 기르는 법 11_내 목표는 생존

초원 위 퓨마같이,


동물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나는 꽤 좋아한다.  휴대폰 하나로, 책도 읽고 노래도 듣고 음식도 사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사는 나에게 자연 날 것 그대로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종을 불문하고 하루하루 단 하나의 목적인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드넓은 초원에서도, 깊은 바다에서도, 나무가 우거진 열대에서도, 자유로운 하늘에서도 말이다.


나는 사람도 동물의 종 중 하나라는 걸 종종 잊어버린다. 고귀한 존재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때가 되면 허기짐으로 울리는 배만 봐도 나는 동물이다.



나는 걱정과 고민이 많다. 여기에 생각도 많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 거나, '어떤 삶을 살아야겠다.'라는 “어떻게”에 대해 생각을 할 때마다, 괴로웠다. 삶에 많은 의미와 기대, 당위성을 부여할수록, 많은 목표와 명제들 속 어떤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그리고 나 자신인지 모른 체, 나에 대한 분노와 좌절로 삶을 메꿨다.


'왜 나는 저렇게 할 수 없을까?', '소심하고 욱하는 내 성격이 싫다.' 등의 생각들은 결국 나를 부정하는 생각과 언어들로 쌓여갔다. 이제, 어떤 사람이 되겠다 든 지 , 어떤 얼굴과 체형을 갖고 싶다든지 혹은 이런 삶을 살아겠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초원의 퓨마처럼, 바닷속 돌고래처럼 내 태생적 목표는 '생존'이다. 퓨마가 앞에 있는 사냥감에만 집중하고 하루치 먹이를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또 달리는 것과 같이, 얼룩말이 살기 위해 포식자로부터 달아나 필사적으로 달리는 것처럼, 나는 '생존'을 우선순위에 두기로 했다.


현재 삶에 불완전한 부분이 있어도, 당장 내일의 일거리가 걱정되어도,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않아 좌절스러울 때, 나 역시 동물임을 상기한다. 그러면서 초원의 퓨마, 바닷속 돌고래, 열대의 이름 모를 곤충을 조용히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우리 선조들은 생존하기 위해 몇 세기 동안 사냥하고, 채집하고 걸어서 이동해 가며 살았다.  수세기로부터 전달받은 종의 목표를 잃으면 안 된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육체와 정신이 쇠사슬로 꽁꽁 묶인 것 같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당위성과 책임을 삶에서 지웠다. 남들이 나에게 정신승리라고 하거나 현실과 타협한 바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를 내리누르는 수많은 무게를 이겨내고 살아남는 것, 그게 최초이자 최종 목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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