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wimming Sep 16. 2024

나를 기르는 법 13_너의 의미

나의 곁에 머무르는 바람처럼

왜 그런 날 있잖아.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이대로 땅밑으로 꺼져 사라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날, 세상에 모든 의미가 빛바래 오래된 사진처럼 모든 게 회색 빛으로 물들고 아무런 의미나 의지가 느껴지지 않아 바람결을 따라 그대로 흩어져도 좋을 것 같은 날.


더 이상 비참해지고 싶지도, 삶의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은 날, 삶의 버거움이 나를 내리눌러 버거움에 짓이겨진 작은 생명처럼 그대로 짓눌러져버리고 싶은 날, 비 온 뒤 길을 잘못 들어 도보에 바싹 말라버린 지렁이처럼 내가 그렇다고 느껴지는 날.


그럴 때마다 네가 생각나.

노래 가사 속 '널 생각해'라는 문장처럼 나는 주체할 수 없이 흘러넘치는 슬픔과 좌절, 우울 속에서 너를 생각해.


너와 맥주를 기울이며 우스꽝스럽게 상사 흉내를 내며 큰 소리로 웃던 날,

카페에서 울먹이던 너를 안아준 날,

맛있는 점심을 먹겠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갔던 날,

수박라떼를 먹으며 커피에 진짜 수박이 들어있던 걸 신기해했던 날,

기분전환 한답시고 백화점 여기저기 구경하던 날,

생일날 드라이브 시켜주겠다며 차를 끌고 온 너와 야밤 드라이브를 했던 날,

늦은 밤 한강을 바라보며 고요히 걸었던  날,

자격증 공부를 하겠다며, 회사에 남아 같이 공부하던 날,


그런 날들이 마음속에 떠올라

그럼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거 같고 조금 더 힘내서 삶에 기대를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

그래서 웃음이 나.


우리가 보냈던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나날들

너는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사람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줘.

나는 이 기억들을 자양분 삼아 살아가겠지.

그래서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오늘도 다시 일어날 수 있어

얼굴에 조용한 미소를 띄우고 나는 다시 나아갈 수 있어.


너에게도 내가 그런 사람일까?

항상 우리가 함께 하지 못해도, 나의 곁에, 너의 곁에 그리고 우리의 곁에 머무르는 바람처럼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이 너의 마음속 찰나의 평안을 주는 서풍이 되길


그것만으로도 난 행복할 거 같아.




이전 12화 나를 기르는 법 12_향기를 남기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