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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imming Nov 04. 2024

(백수일지) 31살에 백수가 된 키라

10. 아이들은 자란다


1. 아이들은 자란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교육을 듣고 집에 가던 길이었다. 교육장 근처에 유치원이 있는 모양인지 초등학생도 안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들 3명과 엄마들 무리를 횡단보도에서 만났다. 오늘 유치원에서 바람개비를 만든 날이었는지 엄마들 손에는 가지각색의 바람개비와 유치원 가방이 들려 있었다. 이어폰을 꽂으려는데, 한 아이가 “나 500원짜리 7개 있어서 비행기 탈 수 있어!”라고 위풍당당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다른 아이들도 자신들의 재정상황을 목 높여 외쳤다. 이 말을 들은 엄마 무리 중 한 엄마가 “너 500원짜리 7개로 비행기 탈 거야?”라고 묻자, 아이가 “엉”이라고 답했다. 이 대화를 듣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참지 못해 횡단보도에서는 여기저기 웃음소리가 피어났다.

아이의 순수함과 자랑스러운 목소리가 너무 웃겼다. 35,000원도 아닌 3,500원짜리 항공권이라니, 정말 광고에서만 보던 땡처리 항공권인가. 나도 사고 싶어 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는 것들이 많아지고 설레기보다 익숙해졌다. 내 성장은 순수함과 등가교환된 셈이다. 버스 정차벨을 누르고 싶어서 엄마에게 절대 벨 누르지 말라고 버스 안에서 목소리 높여 이야기했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아이들은 자라고, 청년은 늙고, 노인은 죽게 되겠지.


2. 500만 원짜리 건강

교통사고 합의를 했다. 대인사고였고 피해자는 물론 나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였지만 다행히도 큰 골절은 없었다. 다만 목과 허리 모두 디스크 2단계로 꾸준한 관리가 필요했다. 건강할 땐 몰랐는데 조금만 오래 앉아 있거나 목을 잘못 쓰면 팔부터 손가락을 타는 신경 모두 아팠다. 전기가 오르는 것처럼, 어쩔 때는 피가 안 통하는 것처럼 통증이 느껴졌다. 아프니 내 몸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에 큰 무력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뭘 조금만 해도 아픈 탓에 오래 무엇인가를 할 수도 없었다. ‘아픈 게 이런 거구나’를 느꼈다. 따라주지 않는 컨디션 탓에 눈물도 자주 났다. 내 몸의 수분이 눈물과 콧물로 다 빠져나가고 우울감과 무력감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았다. 회복하는 중에 손해사정사에게 연락이 왔다. 보험사 담당자 실적이 부족해 진단에 비해 꽤 큰 액수인 500만 원을 제시했다며, 지금 합의를 안 하면 내년까지 생각해야 될 것 같다는 것이다. 500만 원이라는 소리를 듣자 몸이 나아진 것 같기도 했다. 이 정도 아픔은 현대인들 모두가 감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타협. 무엇보다 내년까지 보험사에서 안부를 묻는 척하는 합의 재촉 전화, 내 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손해사정사와 연락을 계속해야 한다는 게 더 스트레스였다. 나는 잇속이 밝아 보이면서도 또 허당이다. 그래서 제대로 따져보기도 전에 알겠다고 했다. 나란 맹추. 돈을 받고 종결되자, 눈물이 났고 또 목과 팔이 더 아픈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서럽고 눈물이 나 자취방에서 콧물을 흘리며 울었다. 진짜 끝이구나 라는 안도감과 더 아프면 나는 이제 어쩌지라는 불안감. 내 몸이 아팠던 시간과 미래 불안성을 생각하면 어떤 금액도 나를 보상해 줄 수 없다. 나는 500만 원만큼만 아플 수 있게 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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